29일 오후 열린 상고사 쟁점 3차 토론회에서 심백강 박사(왼쪽)의 발표에 이어 박준형 박사가 지정 토론을 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하는 ‘상고사’ 세번째 토론회가 29일 열렸다. 이번 주제는 ‘왕검성의 위치와 한 군현’(1차), ‘고조선과 한의 경계, 패수’(2차)에 이어 ‘만번한’(滿潘汗 또는 滿番汗)이다.
이 낯선 지명이 세번째 주제로 채택된 까닭은 진수가 쓴 <삼국지> ‘동이전’에 인용된 어환의 <위략> 중 한 구절 때문이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인 전국시대) 연나라 장군 진개가 (조선의) 서쪽을 공략해 땅 2천여리를 빼앗고 만번한을 조선과의 경계로 삼았다.” 이 기록이 맞다면 만번한이 곧 고조선과 연의 국경선이 되고,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짐작게 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터인데, 안타깝게도 그 정확한 위치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만번한 역시 상고사 논쟁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부각돼온 터였다.
‘고조선과 연의 경계, 만번한은 어디인가’를 주제로 내건 이날 토론회엔 이른바 ‘재야사학’ 쪽에서 심백강 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가, 강단사학 쪽에선 이후석 박사(숭실대)가 각각 발표에 나섰다.
심 박사는 ‘<사고전서>로 살펴본 연나라와 고조선의 경계’라는 발표문에서 강단사학이 “갈석산 동쪽에서 발해를 깔고 앉아 대륙을 지배한 강대국 (…) 위대한 고조선사”를 우리 역사에서 지우고 “모두 중국 연나라 영토에 편입시켰다”며 “고조선을 말살하는 데 동원된 주요 무기가 전국 시대 연나라요 그 이론적 근거가 <위략>의 ‘만번한’ 기사”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사고전서> 등을 토대로 “‘만번한’ 기사가 오류임이 분명한 상황에서 (위치를) 고증해 내기는 어렵다”며, 고조선과 연의 경계를 옛 문헌에 나오는 ‘양평’, 지금의 중국 하북성 노룡현 서남쪽으로 지목했다.
이후석 박사는 ‘고고학을 통해 본 만번한’이란 발표문을 통해 “만번한의 위치를 찾는 것은 고조선의 영역 변천이나 연나라의 요동 진출 과정을 규명하기 위한 필수작업”이긴 하지만, “문헌 사료만으론 만번한의 등장 무렵을 전후해 고조선과 연나라의 경계를 찾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대안으로, 그는 고고학적 물질문화의 분포권을 분석해 ‘문화 경계’를 먼저 파악한 뒤 문헌 사료 중 신빙성이 높은 쪽으로 추론할 것을 제안하면서 기원전 3세기 연과 고조선의 전쟁 이후 두 나라의 경계를 “천산산맥의 서변 일대, 구체적으로는 ‘탕하-대청하-해성하의 상류를 연결하는 구간”이라고 추정했다.
계속해서 박준형 박사(연세대)와 김종서 박사(한국과 세계의 한국역사 교육을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가 참여한 지정 토론·종합토론이 차례로 이어졌지만, 양쪽은 평행선을 달렸다.
강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