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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백남기 농민이 실험했던 ‘나우토피아’

등록 2016-09-29 19:52수정 2016-09-29 20:05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나우토피아
존 조던·이자벨 프레모 지음, 이민주 옮김/아름다운사람들(2013)

간밤에 꿈을 꿨는데 그 꿈속에서는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 경찰들이 빙 둘러서 있고 모두들 뭔가를 들고 있었다. 대체 뭘까? 가만히 보니 흰 꽃 한송이씩을 정성껏 들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꿈인 걸 아는 나는, 이런 꿈을 꾸는 나는 제정신인가 제정신이 아닌가, 의아했다. 다시 잠들기가 어려워서 잠들기 직전에 읽었던 <나우토피아>를 생각했다.

<나우토피아>는 먼 미래에 도래할 유토피아의 모습을 상상하는 책이 아니다. ‘나우토피아’라는 단어 뜻 그대로 ‘여기-천국’ 즉, 근본적으로 다른 현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실현 가능한 실천의 태도’를 찾아 떠난 탐색기라고 할 수 있다. 부부 사이인 두 저자 존 조던과 이자벨 프레모는 열한개의 마이크로 공동체를 탐색했는데, 공동체들에는 반복되는 정신이나 태도가 있다. 현재의 실천을 선호, 위계질서 없는 반권위 사회 선호, 자신을 억압하는 구조에는 “아니오”, 서로에게는 “그래요”라고 할 수 있는 관계의 추구, 함께 이룬 것이 너무나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의 추구, 거의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돈 말고 나눌 것이 있는 관계의 추구, 타인에 의해 삶의 중요한 부분이 결정 나는 시스템에 대한 비순응, 변화보다 적응을 요구하는 시스템에 대한 거부, 집-직장-쇼핑으로 연결되는 생활의 거부, 오로지 상품가치로만 제어되는 사회 시스템이 아닌 다른 시스템에 대한 실험 등이다.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공동체들에 참여한 누구도 개인의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인간을 끝없이 분리시키려는 사회의 논리를 거부하면서, 인간관계를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능력을 재발견하면서 회복되는 것, 저항하면서 창조하는 것에 더 관심이 가 있었다.

‘나 자신은 무엇에 저항하는가? 무엇을 창조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 백남기 농민 사망 소식을 들었고, 고 백남기 농민도 보성에서 나우토피아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느껴졌다. 그가 유기농법으로 우리밀 농사를 짓고 생협에 고추장을 납품하고 자연농법에 대해서 사십여명의 농민들과 공부를 하고 있었고 청빈한 삶의 모습으로 존경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 백남기 농민에게는 삼십년된 친구가 있다. 두 사람은 해질 녘에 막걸리를 한잔 걸치면서 이런 말을 나누곤 했었다. “우리는 그냥 나이 들지 말고 젊은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자.” 지난 11월14일 서울에 올라올 때도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형님, 우리 울타리가 되러 올라가야죠?” “그려, 엊그제 밀도 뿌렸고 콩도 수확했으니 홀가분허니 다녀오세.” 두 사람은 서로를 숨결 같은 사이라고 느꼈었다. 숨결 같은 사이란 어떤 사이일까? 두 사람은 서로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네가 힘들면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내가 그 손을 잡을게.” 이토록 마음을 다정하게 감싸는 말이 또 있겠는가? 이토록 사람을 따뜻하게 묶어주는 말이 또 있겠는가?

고 백남기 농민에게, 그리고 그와 함께 사라진 세계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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