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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뒷골목 누아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등록 2016-09-29 19:52수정 2016-09-29 19:56

한승동의 독서무한
국정원은 매년 100명 안팎을 공개 채용하는데, 먼저 서류전형으로 2000명 정도를 선발한다고 한다. 경쟁률이 서류전형부터 계산하면 100 대 1, 필기시험부터 계산하면 20 대 1쯤 된단다.

김당의 <시크릿 파일 국정원>(메디치)에 따르면, 그 동안 여러 차례 바뀐 필기시험 과목은 논술과 종합교양, 국가정보학 등이었는데 2014년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강조한 남재준 원장 시절부터 국가정보적격성검사(NAT)와 한국사 논술로 바뀌었다. 국정원 채용정보 사이트에 떠 있는 인재상, 곧 국정원이 직원을 채용할 때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핵심요소 6가지는 애국심과 헌신, 책임감, 전문지식, 정보감각, 보안의식인데 이 가운데 가장 중시하는 것이 애국심이란다.

국정원이 요구하는 애국심은 어떤 것일까? 인성검사 시험 질문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단다. “친척들이 모였는데, 한 명이 북한 핵은 북한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떻게 대답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까?

강태진의 만화 <조국과 민족>(비아북)은 국정원이라 특정하진 않지만 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 등의 통합 내지 혼합 이미지의 정보기관 범죄행각을 기막히게 그려냈다. 물론 다 그랬을 리는 없지만, 그 높은 경쟁의 벽을 뚫고 들어간, 애국심 충만했을 그 ‘정예요원’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가.

픽션이지만 실재했던 여러 사건들에 대한 꼼꼼한 조사와 검증을 토대로 한 이 만화는 5공 때의 안기부장 장세동을 모델로 한 ‘실장’과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이미지를 강하게 섞은 유능한 공작요원 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리하여 88올림픽을 앞두고 87년 6월항쟁으로 치닫고 있던 1980년대 중후반의 그 숨 막히던 상황을 서승·서준식 형제, 김병진, 함주명 등의 재일동포 간첩 날조사건들, 박종철·권인숙 고문, 고정·침투간첩 검거사건, 수지킴 사건, 장영자·이철희 사건, 미법도 주민 간첩 날조사건, 당대의 유행 개그 등을 절묘하게 변조·배합해서 한 편의 끔찍하고도 뭉클한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경쾌하게 엮어낸다.

“펄펄 나는 스토리 역량과 시대에 대한 꼼꼼한 고증이 더해진 걸작 (…) 무지하게 재미있고 작품 속에 표현된 기가 막힌 사례가 거의 한 시대에 실재했던 사실이라는 데서 참 슬프기도 하다”는 만화가 박시백의 찬사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고, “‘애국’의 이름 아래 자행된 사건들이 더 박진감 있게 (…) <응답하라 1988>의 판타지가 아닌 뒷골목 누아르로 재현”됐다는 한홍구 교수의 평이 어색하지 않다.

하나는 베테랑 저널리스트의 국정원 취재·연구서고 또 하나는 만화작가의 픽션이지만, 거의 동시에 출간된 두 책은 서로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재직 중 북풍·총풍·세풍 등 이른바 ‘3풍 사건’ 모두에 관여했다가 문구용 칼로 자해소동까지 벌인 권영해 전 안기부장, 개인비리와 심리전단 동원 대선개입 댓글 공작에 불법해킹 지시 혐의까지 받은 ‘불법·비리 3관왕’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야기로 시작해서 탈북자 공무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와 실태 등 국정원의 모든 것을 담은 <시크릿 파일 국정원>이 뼈라면, <조국과 민족>은 피와 살이라고나 할까.

두 책 주인공들은 모두 그 끔찍한 범죄를 “충만한 애국심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저질렀다. 죄책감은커녕 자부심 가득했다는 그들의 정신상태를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은 달라졌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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