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문학동네·1만2500원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스파이>는 20세기 초반 유럽을 주름잡던 전설적인 무희 마타 하리의 삶을 다룬다. 마타 하리는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춤으로 유행을 선도했고, 당대 권력을 쥔 남성들과 숱한 염문을 뿌렸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아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그가 실제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코엘료는 이번 작품에서 마타 하리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이중 간첩이 아닌, 매순간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길 원했던 한 여성으로 바라본다. 마타 하리의 삶이 바뀌는 전환점에는 항상 남성이 있었다. 유치원 교사라는 평범한 꿈을 가졌으나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네덜란드 장교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외도와 아들의 죽음으로 결혼생활도 평탄치 못했다. 유럽에서 무희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지만, 그가 무대에 설 기회를 주거나 뺏을 수 있는 이도 남성이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춤은 그에게 삶의 이유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겨누는 칼끝이 됐다. 드레퓌스를 구명하는 데에 열을 올렸던 당대 지식인, 권력자들은 간첩 혐의를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선 마타 하리에게는 단 한줌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코엘료는 책에서 죽음을 앞둔 마타 하리가 되어, 그를 마지막까지 도왔던 클뤼네 변호사가 되어 마타 하리의 생애를 더듬는다. 특히 클뤼네 변호사가 마타 하리에게 쓴 마지막 편지는, 1차 세계대전의 광풍 속에 사라져간 비범했던 한 여성의 삶에 ‘근거해서’ 글을 쓴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전히 권력에 의해 무고한 삶이 희생되는 오늘날, 그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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