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전승과 창조-뤼징런의 북디자인과 10명의 제자’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는 파주 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만난 뤼징런.
“책을 읽는 것은 수행이고, 책을 만드는 것은 고행이다. 책을 만드는 것은 책임이며,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은 선행이다.”
책 축제 ‘파주 북소리 2016’(10월1~3일)에 맞춰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 ‘전승과 창조-뤼징런의 북디자인과 10명의 제자’전(9월24일~10월23일) 초대 팸플릿에 뤼징런(69)은 그렇게 적었다. 지난달 30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내 작품이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작게나마 중국 북디자인이 지나온 궤적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파주 출판도시를 두고 “세계 유일의 출판 유토피아”라며 “너무 좋아한다”고도 했다.
전시장은 그와 제자 10명의 책 300종 1천여점으로 가득했다. “2012년 독일 오펜바흐에서 개인전을 연 적이 있지만, 그때는 전시 분량이 이번의 10분의 1 정도였다. 중국에서도 이렇게 대규모 전시회를 연 적은 없다.” 내년 베이징 국립중앙미술관에서 고희 기념을 겸해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 예정인 그는 그 전초전 격이 된 이번 전시를 마련해준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 쪽에 고마워했다. 이번 전시물 가운데 “95%는 내 작품”이라고 말했다. “(제자) 10명 가운데 7명은 내가 칭화대에서 가르쳤고, 두 사람은 내 ‘징런 북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그리고 한 분은 출판사에서 나와 함께 일한 사람이다.”
그의 삶엔 극적이란 표현이 어울려 보인다. 문화혁명 때 북디자인 개념조차 모른 채 시골로 ‘하방’당했다가 30살이 채 안 된 나이에 복귀한 뒤 40여년간 중국 북디자인 개념 자체를 뒤바꾸며 북디자인 1세대 대표주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2012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12년간 칭화대에서 그래픽(시각) 디자인을 가르쳤고, 퇴임 뒤에도 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지금은 징런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국제그래픽연맹(AGI) 회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열심히 책을 만들고 후진들을 키우고 있다.
뤼징런이 디자인한 책으로 전시에서 볼 수 있다.
1947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혁명 때 아버지가 자본가로 낙인찍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통에 “북쪽 지방” 농촌으로 하방당해 “10년간 옥수수·배추 종자 배양을 하는 등 농사일을 하고 겨울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면서” 살았다. 원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화가를 꿈꿨던 그는 혼자 그림을 계속 그렸다. 서른이 되기 직전 하방에서 풀려난 그는 신문과 잡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때 출판사에 취직한 것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였다. 디자인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출판사에서 책 표지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고, 판화작업도 했다. 그렇게 해서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운명은 자기 뜻대로 정해지는 게 아니었다.”
그 무렵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됐다. “당시 유입되기 시작한 외국 문물이 부러웠다. 모든 게 달콤하고 동그랗게 보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의 그런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것은 일본 유학 때 “운좋게” 만난 유명한 그래픽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다. “우리는 개혁개방에 고마워해야 한다. 그 덕에 우리 세대가 비로소 외국에 나가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중국과 외국 것의 차이를 알게 되고 그걸 어떻게 융합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파주서 대규모 북디자인 전시
중국 1세대 북디자인 대표주자
문혁때 부친 자본가 몰려 하방당해
개방뒤 일 유학서 북디자인 배워
칭화대서 12년간 디자인 가르쳐
“책, 종이·디지털·작품으로 나뉠 것”
1989~91년, 92~93년 두 차례 스기우라한테서 배운 그는 아시아적 시각의 중요성과 함께 북디자이너란 책 표지만이 아니라 내용도 중시하면서 편집자·작가·일러스트 작가까지도 조율하는 음악연주회의 지휘자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예술과 공학이 만나 그 가치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이는 게 디자인이라는 것, 잡음이 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생명력은 그런 가운데서 나온다는 노이즈학, 인포그래픽의 원리 등을 배웠다. 그리고 “동아시아 전통문화도 좋은 게 많다.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당부도 들었다. “그때 한 방 먹었다.”
지난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않고 한국을 찾았다. 이 기간, 한국 책 디자인이 엄청 변했다고 했다. “출판 내용, 주제에 대해서도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다. 문자와 전통을 중시하는 정병규, 서양 디자인을 도입해 이를 전통과 창의적으로 융합하려는 안상수 등의 시도가 놀랍다. 최근 활발하게 움직이는 독립출판사들의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도 너무 좋아졌다.” 그는 한국과 중국은 “아직 배우는 단계”이자 “서로 배우는 단계”라고 했다. 이달 말에는 그가 기획한 한국 35인 독립출판인들 작품 전시회가 베이징에서 열린다.
뤼징런은 디지털 시대에도 최선의 표현방법론으로서의 북디자인은 필요하다며 “중국은 디지털화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에선 1년에 40여만종의 책이 나올 만큼 출판물량이 엄청나 자원 낭비가 심할 수 있다. 출판사들이 아직도 질이 아니라 양의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장차 책들이 꼭 종이로 만들어 보존해야 하는 책과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디지털 책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며 디지털 책 중심의 대중(大衆)독자와 종이책을 좋아하는 분중(分衆)독자, 그리고 종이책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소장하고자 하는 소중(小衆)독자 개념을 끌어와 말했다. “북디자이너들이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출판사나 일반기업들도 옛날 왕궁처럼 소장 가치가 큰 종이책을 만들려 할 것이다. 나는 소중과 분중 독자들을 위한 두 가지 작업에 주력하겠다.”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