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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감옥서 휴지에 소설 써야했던 40년 전 생각나”

등록 2016-10-20 18:18수정 2016-10-20 21:18

제6회 박경리문학상 응구기 와 티옹오

케냐 출신 ‘피의 꽃잎들’ 대표작
정신적 식민지에 메인 인간 고찰

올 노벨상 유력 후보였으나 불발
“밥 딜런 수상, 문학 폭넓혀 긍정적”
2016 원주박경리문학제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인 케냐 출신의 응구기 와 티옹오가 20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6 원주박경리문학제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인 케냐 출신의 응구기 와 티옹오가 20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경리 선생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서 박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을 이루는 한국과 제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케냐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데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박 선생이 김지하 시인의 장모님이라는 것을 알고서 저에게는 이 문학상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1976년 도쿄에서 열린 ‘한국 문제 긴급 국제회의’에 참석한 바 있고, 그 무렵 접한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은 제가 저의 모국어인 기쿠유어로 쓴 첫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피의 꽃잎들>로 잘 알려진 케냐 출신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는 올해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였다. 13일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기 전인 9월21일 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그가 선정되고 10월20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연다고 발표되었을 때,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첫 방문지가 한국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왔다. 20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응구기는 “박경리문학상 수상 연락을 받고서 내가 재직하는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의 한국인 교수와 대화하면서 ‘박경리문학상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뜻깊은 상이기 때문에 노벨상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응구기는 “도쿄 회의 직후 내가 쓴 글 때문에 경비가 삼엄한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감옥 안에서 화장실 휴지에 기쿠유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는 ‘오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었다”며 “이번 박경리문학상 수상은 나에게 40년 전 추억을 일깨워주었다”고 말했다.

제6회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응구기의 작품이 위치하는 자리는 제국주의, 식민주의, 독립투쟁, 서양과 비서양, 근대와 전근대가 교차하는 지점”이라며 “그러나 <한 톨의 밀알> 같은 작품은 단순한 애국주의 소설이 아니라 공과 사, 행동과 양심 등의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복잡한 문제를 다룬다”고 설명했다. 심사위원인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응구기의 소설은 일상적이고 생동감 넘치면서도 삶의 아이러니와 질곡을 생생하게 담아낸다”며 “지리적 식민지뿐 아니라 정신적 식민지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탈식민주의 시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응구기는 수상 소감에서 “이번 수상이, 내가 문학 작품을 기쿠유어로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 곳곳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면, 또한 아프리카의 언어가 세상에 존재하며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학적 창작과 지적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면 한층 더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나는 세계 모든 소수 언어를 위해 싸우는 전사”라며 “크든 작든 모든 언어는 힘에 따른 위계질서에 지배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서로에게 주고받을 것이 있다”고 말했다.

논란을 낳은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응구기는 “노벨문학상과 달리 박경리문학상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상”이라며 “오랫동안 훌륭한 음악가로 기억돼온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문학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제6회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은 22일 오후 4시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열린다. 응구기는 25일 오후 1시에는 연세대학교 연세·삼성 학술정보관 7층 장기원 국제회의실에서 ‘케냐와 한국의 문학적 연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2016 원주박경리문학제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인 케냐 출신의 응구기 와 티옹오가 20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6 원주박경리문학제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인 케냐 출신의 응구기 와 티옹오가 20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응구기 와 티옹오는?

응구기 와 티옹오는 1938년 케냐에서 태어나 우간다와 영국에서 대학을 마쳤다. 그가 태어날 당시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이어진 마우마우 독립전쟁은 청년기 그의 삶과 초기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62년 희곡 <검은 은둔자>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첫 소설 <울지 마, 아이야>(1964)를 비롯해 <한 톨의 밀알>(1967), <피의 꽃잎들>(1977) 등 같은 작품들에서 식민의 유산과 그에 대한 환멸을 그리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1977년 당국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그는 자신의 부족 언어인 기쿠유어로 된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를 감옥 화장지에 썼는데, 이 작품은 김지하의 담시 ‘오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뒤 그는 기쿠유어로 글을 먼저 쓰고 스스로 영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1982년 영국으로 망명했던 그는 1989년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겨 지금은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 영문학 및 비교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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