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세벽 세시 책읽기
안데르센 교수의 밤
다그 솔스타 지음, 민은영 옮김/문학동네(2016)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슬로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멋쟁이 안데르센 교수는 생크림 크렌베리 소스를 바른 돼지갈비 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혼자만의 멋진 노르웨이식 전통 식사였다. 그의 마음은 그날 밤 아이러니 없이 아주 평온했다. 밤 열한시쯤 되었을까? 건너편 아파트 창가에 긴 금발머리의 호리호리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여인의 목에 손을 댔는데 그것은 사랑스러운 애무가 아니었다. 그는 곧장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자는 몇 번 팔을 내젓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안데르센 교수는 경악했다. 경찰에 연락해야 해! 살인이야! 그러나 그는 생각만 하고 수화기를 들지는 않았다. 신고할까? 말까? 아니야 나는 못해. 그런데, 나는 왜 못하지? 범인은 어차피 범죄에 계속 속박되어 살아갈 텐데 내가 뭐 하러 돌을 던져서 그를 더 괴롭혀? 아니야.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는 다른 사람의 신고로 수사망이 좁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이 고민을 자그만치 두달이나 계속하는데, 그 틈틈이 고전문학을 읽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고전 작품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빛나는 것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살인을 목격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내 행동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걸. 마침내 그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나는 정의실현을 위해 개입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그것이 아무리 신성한 명령이라 할지라도)였다. 그렇지만 그가 ‘내가 뭘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살인자는 유유히 해방되고 자유를 누린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손가락 튕기기다. 즉, 누구도 기회가 왔을 때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면 안 된다. 그러면 천벌을 받는다.(현대적 인간이고자 하는 그는 천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에 놀란다. 천벌이라고? 이 얼마나 낯선 개념인가?) 이 책의 진정한 관심사가 과연 안데르센 교수가 신고를 할 것인가 여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 즉 마땅히 했었어야 하나 하지 않은 일이 우리를 수시로 엄습하고 끈덕지게 사로잡고 해명을 요구한다는 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느껴진다.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반드시 했었어야 하나 하지 않은 일이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뉴스 속 풍경, 그 추악하고 하찮은 풍경 속에서 대담하게 작동한 힘은 이성의 힘도 인간의 마음도 아니었다. 그들의 뻔뻔함은 한 사회를 사회이게 하는 인간적 토대와 살릴 가치가 있는 믿음들을 질식시켜 죽여버리려는 참이었다. 지금 나도 안데르센 교수처럼 경악하고 있다. ‘어머나, 큰 일을 봤어. 이제, 어떻게 하지?’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다그 솔스타 지음, 민은영 옮김/문학동네(2016)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슬로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멋쟁이 안데르센 교수는 생크림 크렌베리 소스를 바른 돼지갈비 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혼자만의 멋진 노르웨이식 전통 식사였다. 그의 마음은 그날 밤 아이러니 없이 아주 평온했다. 밤 열한시쯤 되었을까? 건너편 아파트 창가에 긴 금발머리의 호리호리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여인의 목에 손을 댔는데 그것은 사랑스러운 애무가 아니었다. 그는 곧장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자는 몇 번 팔을 내젓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안데르센 교수는 경악했다. 경찰에 연락해야 해! 살인이야! 그러나 그는 생각만 하고 수화기를 들지는 않았다. 신고할까? 말까? 아니야 나는 못해. 그런데, 나는 왜 못하지? 범인은 어차피 범죄에 계속 속박되어 살아갈 텐데 내가 뭐 하러 돌을 던져서 그를 더 괴롭혀? 아니야.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는 다른 사람의 신고로 수사망이 좁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이 고민을 자그만치 두달이나 계속하는데, 그 틈틈이 고전문학을 읽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고전 작품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빛나는 것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살인을 목격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내 행동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걸. 마침내 그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나는 정의실현을 위해 개입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그것이 아무리 신성한 명령이라 할지라도)였다. 그렇지만 그가 ‘내가 뭘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살인자는 유유히 해방되고 자유를 누린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손가락 튕기기다. 즉, 누구도 기회가 왔을 때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면 안 된다. 그러면 천벌을 받는다.(현대적 인간이고자 하는 그는 천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에 놀란다. 천벌이라고? 이 얼마나 낯선 개념인가?) 이 책의 진정한 관심사가 과연 안데르센 교수가 신고를 할 것인가 여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 즉 마땅히 했었어야 하나 하지 않은 일이 우리를 수시로 엄습하고 끈덕지게 사로잡고 해명을 요구한다는 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느껴진다.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반드시 했었어야 하나 하지 않은 일이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뉴스 속 풍경, 그 추악하고 하찮은 풍경 속에서 대담하게 작동한 힘은 이성의 힘도 인간의 마음도 아니었다. 그들의 뻔뻔함은 한 사회를 사회이게 하는 인간적 토대와 살릴 가치가 있는 믿음들을 질식시켜 죽여버리려는 참이었다. 지금 나도 안데르센 교수처럼 경악하고 있다. ‘어머나, 큰 일을 봤어. 이제, 어떻게 하지?’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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