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각)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한 조정래 작가(가운데)가 부인 김초혜 시인의 사진을 붙인 수첩을 들어 보이며 부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왼쪽은 <정글만리> 영어판 번역자인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이고, 오른쪽은 통역자 김유정씨다.
“<정글만리>의 주인공은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이 아니라 그의 조카로 중국 여성과 결혼하게 되는 유학생 청년 송재형입니다. 저는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이 소설을 쓴 거예요. 우리에게 중국은 무척 중요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도 중요하죠. 그게 우리 민족의 운명입니다. 이 강국들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평화통일과 영세중립이 바로 우리 민족이 살 길이에요.” 18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브라워 센터. 작가 조정래가 300여 청중을 앞에 두고 특유의 열정적인 어조로 말을 했다. 지난달 초에 나온 <정글만리> 영어판(Human Jungle, 브루스 풀턴·윤주찬 공역) 출간을 기념해 이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한국학센터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 제2부 ‘작가와의 대담’에서 객석의 청중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18일(현지시각)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한 조정래 작가(가운데)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정글만리> 영어판 번역자인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이고, 오른쪽은 통역자 김유정씨다.
이날 심포지엄 제1부에서는 <정글만리> 번역자인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교수와 이남희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조정래 작가의 ‘나의 삶, 나의 문학’이라는 강연에 이어 청중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1부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독감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원고만 보내왔다.
풀턴 교수는 ‘21세기의 조정래: <오, 하느님>과 <정글만리>’라는 발표에서 “역사의 주역인 이름 없는 개인들에 대한 관심은 조정래 소설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라며 “최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일인칭 서술에 매몰되어 한국 현대사와 동아시아 같은 커다란 주제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데 비해 조정래는 구비문학에서부터 비롯되는 스토리텔링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야기꾼’”이라고 평가했다.
18일(현지시각)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한 조정래 작가(가운데)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정글만리> 영어판 번역자인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이고, 오른쪽은 통역자 김유정씨다.
이남희 교수는 ‘<태백산맥>과 한국전쟁의 사회적 기억’이라는 발표에서 “같은 소재를 다룬 이병주의 <지리산>이나 이태의 <남부군>에 비해 <태백산맥>의 가장 큰 특징은 지식인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라며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일상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태백산맥>의 농민은 오늘날의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민중 개념의 발생과 맥락을 다룬 이 교수의 연구서 <민중 만들기>는 지난해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유학생과 교민 등을 포함한 청중은 조정래 작가와 연구자들의 발표를 집중해서 들은 뒤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인간에게 기여하는’ 작품을 쓰려 한다는 작가의 발표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작품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가 주도하는 문단의 평가가 있고 독자의 평가가 있다”며 “한국의 경우 특히 독자 대중과 유리된 문단의 허위의식이 팽배한 편인데,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독자의 평가”라고 강조했다. 일본이나 중국 문학에 비해 미국 등 해외에서 한국 문학의 위상이 낮은 까닭을 묻는 질문에는 “중국은 서양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18세기 동안 세계적 강국이었고 일본 역시 200년 전에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고 현대화의 길을 걸은 반면 대한민국 역사는 이제 겨우 70년”이라며 “문학의 위상은 국가의 위상과 비례하는 만큼 30년, 50년 앞을 내다보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18일(현지시각)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한 조정래 작가(가운데)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정글만리> 영어판 번역자인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이고, 오른쪽은 통역자 김유정씨다.
마지막으로 ‘헬조선’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조언을 청하는 청중에게는 “노년층 투표율이 70~80퍼센트인 반면 20~30대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25퍼센트에도 못 미친다”며 “젊은이들이 모든 중요한 결정권을 기성세대에 떠넘겨 놓고 말로만 ‘헬조선’을 부르짖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선거부터 제대로 하라”고 주문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로서 이날 행사를 기획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조정래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임에도 해외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다”며 “<정글만리> 영어판 출간을 계기로 한국 문학의 폭과 깊이를 미국 독자들에게도 보여주고자 행사를 마련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청중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버클리(미국)/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