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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모든 언더그라운드를 위해 건배

등록 2016-12-02 19:26수정 2016-12-02 21:48

[토요판] 김해자, 나의 시를 말하다
어진내에 두고 온 나  김해자

지금도 청천동 콘크리트 건물 밖에는 플러그 뽑힌 채 장대비에 젖고 있는 도요타 미파 브라더 싱가 미싱들이 서 있죠 나오다 안 나오다 끝내 끊긴 황달 든 월급봉투들 무짠지와 미역냉국으로 빈 배 채우고 있어요 얼어붙은 시래기 걸려 있는 담 끼고 굽이도는 골목 끝, 아득하고 고운 옛날 어진내라 불리던 인천, 갈산동 그 쪽방에는 연탄보다 번개탄을 더 많이 사는 소녀가 살고 있네요 야근 마치고 돌아오면 늘 먼저 잠들어 있는 연탄불 활활 타오르기 전 곯아떨어지는 등 굽은 한뎃잠

배추밭에 배추나비 한가로이 노닐던 가정동 슬라브집 문간방에는 사흘 걸러 쥐어터지던 붉은 해당화가 울고 있어요 지금도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듣지 않으려 귀 막고 이불 속에 숨어 있다 저도 몰래 뛰쳐나가 패대기쳐진 여인과 아이와 한 덩어리 된 어린 여자 눈물방울이 아직도 흙바닥에 뒹굴고 있을까

교도소가 마주 보이던 학익동 모퉁이 키 낮은 집 흙벽 아궁이가 있던 옛 부엌엔 전단지 속 휘갈긴 어린 해고자 메모 ‘배가 고파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애호박 몇 조각 둥둥 떠다니는 밀가루 죽이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효성동 송현동 송림동 바람 몰아치던 주안 언덕배기 그 작고 낮은 닭장집 창문마다 한밤중이면 하나둘 새어 나오는 쓸쓸하고 낮고 따스한 불빛

이상하기도 하죠 스무 해 전에 도망쳐 왔는데
아직도 내가 거기에 있다니
내가 떠나온 그곳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니요
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
아직도 머리채 잡혀 끌려가고 있다니
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는데
제자리에 선 뜀박질이었다니요

시집 <집에 가자>(삶창·2015)에 수록

제가 1984년 가을 처음 얻은 방은 보증금 20만원에 4만원짜리였죠. 주인집 좌우로 닭장들이 늘어서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좁은 복도에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옛날 어진내라 부르던 인천(仁川), 효성동 청천동 가정동 송림동 송현동 학익동 등 벌집 전전하며, 컨베이어벨트 앞에 앉아 오디오에 나사를 박거나 계산기에 라벨을 붙이거나 포장 일을 했죠.

그중 거의 A급 기술에까지 이른 건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철야하고 수요일 빼곤 거의 야근했어요. 박카스를 먹지 않으면 눈이 안 떠지고 타이밍(각성제)을 먹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 바늘에 찔렸죠. 미싱대에 머리를 처박은 채 못 깨어나거나 스르르 떨어지는 미싱사도 있었어요. 한 줄에 꿰인 호박꼬치나 굴비처럼 줄줄이 앉아 손에 손으로 에이스와 새우깡이 건네지던 곳, 졸린 잠 쫓으려 커피믹스 손바닥 위에 나누어 가루째 털어 넣던 황달 걸린 월급봉투들.

스물셋부터 시작한 일이 서른 중반까지 이어졌어요. 많은 동료 스승들을 현장에서 만났죠. 늦게 시작했으니 기술은 당연히 딸렸고 참을성도 인생 경험도 잔뼈 굵은 의리에서도 저는 그들에 못 미쳤어요. 가르치고 의식화하겠다 덤빌 주제가 못 되는 걸 너무 일찍 알아채버린 전 그냥 일개 노동자로 살았죠. 그 스승 중 하나는 미싱에 앉았다 하면 날개가 달린 것처럼 손이 민첩하고 검소하고 겸손하기까지 한 억척빼기 반장이었어요. 배가 미싱판에 닿도록 일하다 산통이 와 그날로 아이를 낳은 그 억척이를 몇 년 후 찾아갔더니 지하방 살더군요. 함께 일할 때 낳은 아이가 자라 실밥을 따고, 그사이 낳은 둘째는 먼지 날리는 원단조각과 솜뭉치 속에서 자고 있었죠. 디자인을 훑어만 봐도 반나절도 안 되어 완제품을 만들던, 대기업 본사 샘플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 친구는 주머니와 소매 등 부속품들을 납품하며 연체하고 떼먹기 일쑤인 본청에 골머리 앓고 있더군요.

그리고 올봄 어느 청년이 시를 배우겠다고 왔어요. 종이와 볼펜 대신, 칼라나 소맷부리가 빳빳하라고 넣는 풀 먹인 심지 위에 초크로 시를 쓴 제게 말입니다. 아버지와 고모가 미싱사였다는 그 청년은 알바와 알바 사이 김밥과 초코파이로 때워요. 새벽에 돌아간 반지하 원룸에서 배고프면 밥에 짜장 비벼 반찬도 없이 물만 놓고 먹는대요. 수업이 끝나던 날 그 청년이 봉투를 내밀었죠. “제가요, 얻어만 먹어서요, 마지막 날은 제가 꼭 대접하고 싶어서요….” 알바를 세 탕이나 뛰며 공부하는 그 청년이 내민 봉투를 보니 12만원이 들어 있더군요. 하루 3천원씩 40일을 모았대요.

희한하기도 하죠.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니. 내가 살던 닭장집과 지하방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니. 잔업 150시간 월세 밥값 전기세 물세 물고 나면 버스표 몇십 장 뒹굴던 시급 400원짜리 내가 저기서 살고 있다니. 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들, 나 대신 아직도 머리채 잡혀 끌려가고 있다니. 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는데 러닝 머신 위에서 뛰고 있었다니. 제자리를 지키면 살 거라 믿은 백성들의 배를 모는 자가 권력과 자본과 비리와 거짓을 합체해 만든 얼굴 없는 귀신들이었다니.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 앞에 바쳐진 제사상에 수저를 얹어주고 있었다니.

누르고 누리는 자들의 파렴치와 몸서리쳐지는 아수라장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만난 스승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진 게 없고 못 배웠어도 그들은 쌈박하고 염치가 있었죠. “사드 옮겼다매? 거그도 성주잖아. 여서 싫다 했는데 거그서는 좋다 한다꼬? 내 싫은 거 옆집에 줘놓고 좋다 한데이. 이놈의 시끼 인간이 되나?” “법이 사람이 만든 거지 하늘이 만들었어? 법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지, 세월호 특별법 제대로 왜 못 맨들어?” 노한 음성으로 질타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와 행동하는 양심을 봅니다. 지도자들은 가르치려 들 게 아니라 일개 시민인 그들에게 배워야 했던 겁니다. 시대의 어둠 속에서 쓸쓸하고 낮고 따스한 불빛들을 밝히는 이 모든 언더그라운드를 위해 건배.

김해자 시인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무화과는 없다> <축제> <집에 가자>, 산문집으로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와 민중구술자서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등이 있다.


‘다름’이 지우지 못하는 ‘같음’

지난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의 청년이 열차에 치인 시각은 오후 5시57분. 유품이 된 컵라면은 그가 그 시각까지 먹지 못한 점심이거나, 종일 바깥에서 일한 사람의 한 끼로는 턱없이 모자란 저녁이었을 것이다. 그의 월급은 144만6천원. 야근과 휴일근무 수당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미성년 노동자의 죽음은 ‘비용 절감’의 살인적인 시스템이 예비해둔 완벽한 타살이었다. 배후에는 그렇게 절감된 돈을 가져가는 누군가가 있고, 청년의 죽음 후에도 바뀌지 않는 착취의 하청 구조가 있다. 이 사건이 불러일으킨 것은 분노와 슬픔만은 아니었다. 청년을 죽인 지하철이, 우리가 일하고 친구를 만나고 시장에 가기 위해 타고 다니는 그 지하철이라는 끔찍한 깨달음이었다. 지하철만이 아닌, 우리가 이용하는 모든 시설과 물품과 서비스에 노동자의 피로와 죽음이 배어 있다는 비통한 각성이었다.

김해자는 이 새삼스러운 각성이 감상적인 동일시가 되어서도, 각자의 경제적 처지에 대한 선명한 구별짓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노동의 현실은 더 교활해졌지만 노동시는 쇠퇴한 지금, 20세기보다 더 황폐한 21세기에 묵묵히 노동시를 쓰면서 김해자는 다른 차원의 동일시와 구별짓기를 말한다. 스무 해 전에 도망쳐 나온 청천동 미싱 골목에, 효성동 송현동 등등의 작고 낮은 닭장집에, “아직도 내가 거기에 있다니/ 내가 떠나온 그곳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니요”.

‘다른 나’는 타자이면서 ‘나’다. 내가 떠나온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고, 20년 전의 ‘나’와 같다. 그런데 이 시차는 개인적인 것일 뿐 현실 전체의 것은 아니다. 현실 전체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던, “제자리에 선 뜀박질”은 각자의 처지가 아무리 달라(졌어)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현실’이다. 다름을 지운 같음이 아니라, 다름이 지우지 못하는 같음. 김해자는 이 ‘다른 같음’의 궁핍과 처절함을 쓴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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