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1만5000원 “제발 디자인 좀 하지 마세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 박현택은 전시 도록을 만들 때 외부 업체에 이렇게 말해왔다고 한다. 소장품은 그 자체 미적 가치가 있으니 특별한 수식을 하지 말라는 당부다. <오래된 디자인>(초판 2013) 개정판과 함께 선보인 새 책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디자인 과잉의 시대’인 지금 여기, 평범하고 자연스러워 더욱 돋보이는 디자인들을 소개한다. 폐자재로 만든 쓰레받기, 나무의자, 삽, 포스트잇 등에 관한 24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소프트커버에다 소박하지만 편안하게 읽도록 디자인했다. 내용도 ‘꾸밈의 기술’보다 ‘일상의 양식’을 강조한다. 화려한 겉모양에 집착하는 현상을 회의하는 지은이는 동시대 민중을 위로하고 사색하게 하며 시대적 담론과 문제의식을 도출하는 디자인, 그런 박물관에 애정을 기울인다. 맹목적인 전통 예찬으로 얼룩진 정부 정책 비판은 특히나 선명하다. “문화 정체성이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쉴 새 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유기체적 성격을 띤다.” 태극을 형상화한 박근혜 정부 통합 상징도 정책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태극이 담은 우주 변화와 참여의 뜻을 외면한 채 다만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등의 구호로 “재탕”하는 현실이 “불편하다”는 일갈이다. “통합, 애국, 정통성, 소통이라는 듣기 좋은 단어들의 종합 선물세트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자들이 무늬만 바꾼 채 자신들의 알리바이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은 ‘비선 실세’의 영향력이 드러나기 전, 정부 상징 작업 당시 시대착오적이고 독선적 사업에 의구심을 품고 쓴 것이라 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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