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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오규원 시인 벌써 10주기…추모전 등 봇물

등록 2017-01-23 15:21수정 2017-01-23 21:27

‘날이미지’ 드러내는 독특한 시론 주창
‘문지시인선’ 표지 포맷도 처음 만들어
71년 첫 시집 복간…고문 일화도 소개
2월말까지 낭송회·특별전 등 추모행사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은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오규원 ‘봄’ 부분)

인간의 인식 체계와 언어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물 자체의 ‘날이미지’를 드러내는 ‘날이미지’ 시론을 주창한 시인 오규원(1941~2007)의 10주기를 맞아 전시와 책 출간 등 다양한 추모 행사가 마련된다.

그의 서울예대 문창과 제자들과 동료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오규원 10주기 준비위원회’는 10주기 기일인 2월2일 오후 강화도 전등사 인근 시인의 수목장 ‘시목’(詩木)을 참배하고 그날 저녁 서울 종로구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시 낭독회를 여는 등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다양한 추모 행사를 연다고 밝혔다.

1월31일부터 2월26일까지 류가헌에서는 오규원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시인이 자신의 시세계를 스스로 말하는 영상, 육필, 카메라와 망원경 등 손때 묻은 유품이 나오는 특별전 ‘봄은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가 진행된다. 전시에 나오는 20점을 비롯해 시인이 찍은 사진 56컷을 그의 제자이기도 한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가 직접 고른 사진집 <무릉의 저녁>도 책으로 나온다.

오규원 시인이 1971년에 낸 첫 시집 <분명한 사건>도 복간 시집을 대상으로 삼는 문학과지성사의 ‘R 시리즈’로 다시 나온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오규원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와 송구’라는 제목의 발문에서 오규원에 얽힌 인연을 소개한다. 1970년 김병익이 문우들과 <문학과지성>을 창간한 뒤 원고료 충당에 애를 먹고 있을 무렵 당시 화장품회사 홍보지 편집 제작을 담당하고 있던 오규원은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몇년 동안 후원금을 냈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의 초기 대표작인 <당신들의 천국>(이청준)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표지 장정을 하고 시집 총서 ‘문지 시인선’ 표지 포맷을 지금 형태로 만든 것도 오규원이었다. 화장품 회사 사보 편집 일을 할 때 오규원은 당시 기자였던 김병익에게 잡문 연재를 맡겼는데,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어느날 지나가는 말처럼 “남산(중앙정보부)에 가서 당했더니 몸이 휘청거린다”며 농담처럼 말했다. 알고 보니 해외 독재 권력의 부패를 꼬집은 김병익의 글을 문제삼아 필자가 아닌 편집 담당자를 고문한 것이었다고.

이수명, 김행숙에서부터 김언, 오은, 백은선 등 후배 시인 48명이 오규원의 시 네편 ‘버스정거장에서’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 ‘토마토와 나이프’ ‘한 잎의 여자’ 중 한편을 골라 시의 제목이나 시어 또는 소재 등을 이용해 겹쳐 쓰거나 이어 쓰거나 새롭게 쓴 헌정 시집 <노점의 빈 의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도 나온다. 2월8일부터 26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8시30분에는 김혜순 장석남 함민복 최정례 시인이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을 가지고 시 창작 및 독서 강좌를 한다. 23일 저녁 7~9시에는 헌정 시집에 참여한 젊은 시인들의 낭독회도 열린다. 오규원 10주기 준비위원회는 또 11월 중에 오규원 시의 현재적 의미를 다룬 심포지엄을 열고 그 결과를 단행본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제자인 박형준 시인은 “선생님은 시인이 철학적 관념이나 신문기사 같은 방식이 아니라 시라는 투명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시로써 발언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며 “대상을 날것 그대로 봄으로써 시를 드러내는 선생님의 ‘날이미지시’는 인식의 예술이자 전복의 사회학이었다”고 오규원 시의 의미를 설명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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