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형제
데이비드 매컬로 지음, 박중서 옮김/승산·2만원
비행의 발견
마크 밴호네커 지음, 나시윤 옮김/북플래닛·1만6500원
일할 때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다. 나사못 하나를 조이더라도, 철사를 하나 매더라도 완벽성에 매달렸다. 점포 뒤쪽 작업장은 위대한 발명품의 산실이었다. 귀족들의 초대 연회 때는 덜렁 외투 하나 걸치고 걸어서 갔다. 그러나 특허 분쟁에는 소송을 마다하지 않고 집착했다.
이 묘사에서 점포를 차고로, 귀족을 명사로 바꾼다면 꼭 21세기의 게임 체인저 스티브 잡스가 떠오른다. <라이트 형제>를 보면 잡스형 인간의 모델은 100년 전에도 있었다. 미국적 실용주의와 근면함으로 20세기 항공시대를 연 현대판 다이달로스 라이트 형제가 그렇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첫 유인 동력비행 성공 이래 세상은 바뀌었다. 오빌 라이트가 조종석에 앉아있고, 윌버가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승산 제공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자전거 매장을 운영했던 라이트 형제의 이름은 윌버와 오빌이다. 아버지 밀턴과 어머니 수전 코너의 셋째와 넷째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하지만 1903년 둘의 첫 유인 동력비행 성공 이래 세상은 바뀌었다. “기내식 한번 먹고 싶다” “주말에 해외에 다녀올까”라는 말은 예사로 듣게 됐다. 대형 항공기는 300톤 이상의 중량에도 공중으로 우악스럽게 솟구친다. 우주는 미지의 영역에서 접근 가능한 신천지가 됐다.
윌버와 오빌이 평생 독신으로 살며 ‘비행기의 아버지’가 된 배경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천재과로 관련 서적을 탐독한 윌버와 자유자재로 공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오빌은 요즘의 분업 노동자가 아니었다. 자전거 점포를 운영할 때 ‘밴 클레브’라는 자전거를 직접 만들어 꽤 비싼 가격에 팔았듯이, 그들은 비행기의 미끄럼틀에서 꼬리날개 연결부위, 심지어 동력원인 엔진까지 직접 만들었다. 무엇이든 스스로 제작해 혼을 불어넣었다.
철도, 전화, 자동차 등 새로운 산업의 성장과 물리학·역학 등 과학적 지식 기반의 확산은 외부효과였다. 스미스소니언연구소 등 기관으로부터 자료를 받거나 학계 권위자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처럼 새의 날개를 본뜬 날틀로 항공실험을 하다 추락사한 선배들의 축적물이 있었고, 초기 비행기 개발에 관심이 높았던 프랑스의 경쟁자들은 선의의 자극제가 됐다.
오하이오 데이턴 집 계단에 앉은 윌버(왼쪽)와 오빌 라이트 형제. 1909년. 승산 제공
따뜻한 가족애도 큰 힘이었다. 종교인 아버지 밀턴은 열린 마음으로 교회 편향을 경계했고, 학교 교육보다는 독서의 힘을 믿었다. 유일한 대학 졸업생인 동생 캐서린은 50대 결혼 때까지 두 오빠의 내조자였다. 오빠 오빌이 1908년 미국 육군의 포트마이어 연병장에서 비행시범 중 추락해 사경을 헤맸을 때는 교직을 멈추고 온몸을 다해 돌봤다. 파리 외곽 르망에서 세계 최장시간, 최고높이의 비행기록으로 라이트 비행기의 대중화에 나섰던 형 윌버조차 “나와 동생은 둘이 함께해야 한다”며 급거 귀국한다.
오지인 노스캐롤라이나 동부 해안의 아우터뱅크스로 긴 여행을 떠나, 키티호크나 킬데블힐스 등 백사장에서 목숨을 건 실험비행을 한 것은 열정이었다. 1000달러도 안 되는 제작비로 전쟁부(국방부)로부터 7만 달러 이상을 지원받은 스미스소니언의 항공기 개발사업을 압도한 것은 놀랍다. 이런 까닭에 둘은 특허소송으로 권리를 지키는 데 민감했다. 하지만 돈이 목표는 아니었다. 45살 때인 1912년 요절한 형 윌버가 남긴 재산은 당시 106만 달러. 비행기 발명자로 누린 혜택으로는 규모가 큰 것이 아니었다. 윌버 스스로 “영리보다는 지식의 추구에서 더 큰 노동의 대가를 바랐”고, “남들에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돈이면 충분하다”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닿아 있다.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 데이비드 매컬로가 각종 간행물과 일기, 1천여통의 가족 간 편지 등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라이트 형제의 삶을 세밀하게 포착했다.
<비행의 발견>은 라이트 형제의 산물을 조종하는 영국 브리티시에어의 부기장 마크 밴호네커의 비행기 예찬이다.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싶었던 밴호네커는 대학원 졸업 뒤 경영컨설턴트로 3년간 일한 뒤 평생의 소원인 조종사로 전직해 하늘을 나는 자유의 다채로움을 설명한다. 비행기가 가는 길을 안내하는 지상의 등대 비콘과 갈림길인 웨이포인트는 덜렁 좌석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승객들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안데스나 로키 산맥을 지날 때, 그린란드의 백색 세계를 날 때 지은이는 자연의 웅장한 모습에 전율한다. 하지만 대형 상업용 항공기를 운항하는 것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2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탁 트인 평원과 강을 좇는 카렌 브릭슨(메릴 스트립)과 데니스 해튼(로버트 레드포드)의 낭만주의 비행과 비교할 때 꼭 나은 것만은 아닐 것 같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