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우 산문집 ‘지금 나에게도…’
‘노예수첩’ 필화사건과 옥중시집 등
“블랙리스트는 옛날로 돌아간 짓”
‘노예수첩’ 필화사건과 옥중시집 등
“블랙리스트는 옛날로 돌아간 짓”
양성우 지음/일송북·1만4800원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홧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잠든 아기의 베개맡에서/ 결코 우리는 부끄러울 뿐/ 한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네/ 물려줄 것은 부끄러움뿐/ 잠든 아기의 베개맡에서/ 우리들은 또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양성우 ‘겨울공화국’ 부분) 양성우(74) 시인은 박정희 유신 정권의 폭압을 겨울에 빗댄 이 시를 1975년 2월12일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강당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서 직접 낭독했고, 그 일은 그의 삶을 거세게 뒤흔들었다. 당시 광주중앙여고에 재직하며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시 쓰는 총각시인’은 그 일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1977년에는 장편시 ‘노예수첩’을 일본 잡지 <세카이>에 발표한 일로 투옥돼 2년 남짓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의 시집 <겨울공화국>(1977)과 <북치는 앉은뱅이>(1980)는 나오자마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경찰은 수거한 시집을 한강변에 모아 놓고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 양성우 시인이 신작 산문집 <지금 나에게도 시간을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에서 ‘겨울공화국’과 ‘노예수첩’으로 인한 필화 사건을 비롯해 20~40대 삶의 격랑기(激浪期)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고교 2학년이던 1960년 4·19 시위에 참여했고 이듬해에는 대학생들이 만든 ‘민족통일연구회’(민통연)의 하부 조직인 민통연 호남고등학생연맹 회장을 맡았다가 5·16 쿠데타 이튿날 1교시 수업시간에 무장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끌려간 일은 앞으로 이어질 파란만장한 삶의 서막이었다. 학생 대상 문예지 <학원>에 시와 소설을 투고하는 문학소년이자 혁명가 체 게바라를 동경하는 열혈 청년이었던 그의 이후 삶은 문학과 변혁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굴러가게 된다. “그곳은 처음부터 문학 언어와 법률 언어의 충돌과 함께, 문학은 정치 체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검찰의 틀에 박힌 법리에 맞서서 그것을 부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나의 진술이 거세게 부딪치는 논쟁의 현장이었다. (…) 어쩌면 그곳은 마치 나를 벌주려는 법정이 아니라 현대문학 세미나장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전적 산문집 <지금 나에게도 시간을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를 내고 22일 낮 기자들과 만난 양성우 시인. “돌아보면 고통스럽고 힘든 삶이었고 실패한 삶이라 할 수도 있지만, 뒤에 오는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거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책으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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