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왜 태극기는 여전히 가건물 위에서만 펄럭이는가”

등록 2017-03-09 19:35수정 2017-03-09 20:56

‘문학동네’ 촛불·태극기집회 특집
김훈 “광장은 불행이자 희망”
최현숙 이영광 전규찬 등 참여
문학동네 2017년 봄호
편집부 엮음/문학동네·1만5000원

문학동네 출판사는 세월호 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를 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2014년 이 출판사 도서 25종이 세종도서(우수도서)로 뽑혔으나 2015년에는 5종으로 크게 줄었다. 우수문예지 지원사업이 중단된 것도 문학동네를 비롯해 정권 눈밖에 난 출판사들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조처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6일 밝힌 내용이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 특집에 실렸던 글을 묶은 책이다. 새로 나온 <문학동네> 2017년 봄호는 ‘촛불과 태극기’를 특집으로 삼았다. 소설가 김훈·이기호·김사과와 시인 이영광, 논픽션 작가 최현숙, 언론학자 전규찬, 평론가 최진석이 참여했다.

“일흔 살을 맞는 세모에, 내 소년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를 흔드는 애국단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스스로 물었다. 그 질문은 난해했다. 한 시대가 가건물로 붕괴되는 듯싶었다.”

소설가 김훈, 이기호, 김사과, 시인 이영광
소설가 김훈, 이기호, 김사과, 시인 이영광
김훈은 ‘태극기에 대한 나의 요즘 생각’에서 이른바 태극기집회를 바라보는 심경을 이렇게 썼다.

그는 자신이 중고교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나 외국 원수들이 공항을 드나들 때마다 태극기를 든 채 동원되었던 곳에서 ‘애국단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대통령 탄핵 반대를 부르짖는 모습을 보며 개탄한다. “광복 칠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왜 태극기는 국민적 보편성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왜 태극기는 여전히 가건물 위에서만 펄럭이는가.” 김훈은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행태를 가리켜 “부패와 권력 남용의 뿌리는 심원했고, 범위는 방대했고, 디테일은 주밀했는데, 그 기법은 구전설화적이었다”고 비판하면서 “공적 시스템이 무너져서 공회전하는 사태가 광장으로 끌려와서 공론화된다는 것은 불행이고 또 희망”이라는 말로 유보적 희망의 뜻을 피력했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이자 구술생애사 작가인 최현숙은 ‘모든 밀려난 존재들의 악다구니는 아름답다’는 글에서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노인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자신의 책 <할배의 탄생>의 두 주인공인 이영식과 김용술을 비롯해 그가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는 “여섯 노인 모두 박근혜를 찍었고, 2016년 11월 중순에는 모두 박근혜가 내려와야 한다며 돌아섰다가 2017년 1월 현재 이영식과 황문자를 뺀 네 명의 노인이 ‘박근혜는 속은 것뿐’이라며 또 돌아섰다.” 그는 우선 태극기 집회 참가 노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태극기들이 이해가 된다. 그들 대부분이 살아온 고단한 삶 때문에라도, 일단 옹호다. 동정도 혐오의 뒷면이고 조롱은 자괴의 방어기제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나왔다. (…) 촛불과 함께하고 태극기에 잠입하면서도 마음은 오나가나 차가운 이유다. 2016년의 촛불이 고맙지만, 믿지 않는다.”

논픽션 작가 최현숙, 언론학자 전규찬, 평론가 최진석
논픽션 작가 최현숙, 언론학자 전규찬, 평론가 최진석
“박근혜의 욕망이 또한 우리 자신의 욕망”이었을 수 있다며 “박근혜를 제거해도 박근혜적인 것의 구조는 삭제되지 않은 채 영구히 영향을 끼칠 것”이라 경계하는 최진석(‘‘박근혜적인 것’과 정동의 정치학’)의 논지, “그들을 완전히 꺾을 수 있을까? (…) 기대감보다는 피로감이 크다”며 착잡한 심사를 내비치는 김사과의 글(‘내전전야’)이 최현숙의 생각과 통한다 하겠다.

유머리스트를 자처하는 이기호(‘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가 조심스러운 낙관의 태도를 보인다면, 이영광과 전규찬의 글은 촛불집회에 대한 유보 없는 지지와 공감을 담았다. 전규찬은 ‘게이트들의 게이트, 촛불들의 촛불, 그리고 미디어 문화정치’라는 글에서 “KBS와 MBC는 (…) 청와대 어용방송으로 전락”한 가운데 “한겨레, JTBC가 사실상 의제 설정, 프레임 조각의 쌍끌이 역을 도맡았다”며 “다양한 미디어 생태계의 조성”을 언론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영광(‘백만 가운데 하나’)은 “촛불은 흔들리기도 흐려지기도 할 것”이라면서도 “촛불의 집단지성과 에너지를 믿고 싶다”며 글 말미에 자신의 시 ‘촛불’을 인용했다.

“나는 나를 백만분의 일로/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거대해질 수 있다”(이영광, ‘촛불’ 부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