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펴냄. 3만2000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펴냄. 3만2000원
‘이기적 유전자’의 진화생물학자 도킨스
타임머신 타고 훓어본 ‘지구 생물종의 족보’
“인간은 모든 생물의 진화 종착지 아니며
다른 생물종과 공통 선조 둔 친족관계였다”
화제작 <이기적 유전자>(1976), <눈먼 시계공>(1986) 등의 저자이자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62·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가 지구 생물의 장대한 진화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엮은 새 책을 내놓았다. 이번에 그는 경건한 순례자가 됐다. 유럽 중세문학의 고전 <켄터베리 이야기>의 제프리 초서처럼 그는 시간여행의 순례에 나서며 마주치는 지구 생물종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도킨스의 2004년 신작 <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까치 펴냄)는 ‘지구 생물종의 족보’에 기록된 인간의 머나먼 조상을 찾아가는 생물학자인 순례자의 기록이다. 침팬지, 오랑우탄부터 두더지, 토끼, 도롱뇽, 폐어, 지렁이를 거쳐 진핵·원핵세포에 이르는 수십억년 진화의 이야기가 줄거리다.
‘도킨스 순례단’의 과거 여행은 특별한 ‘의도’에서 기획됐다.
그는 인간이 모든 생물 진화의 종착지인 양 행세하는 태도를 ‘사후 자만심’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판한다. 또 원시 생명체와 원시 세포의 탄생부터 어류, 포유류를 거쳐 인류의 탄생에 이르는 인간 중심의 서술 방식을 거부한다. 오히려 현재 생물종들이 각자 자신이 걸어온 진화의 길을 거슬러가며 공통 조상의 시대에서 마주치는 역순의 시간여행이야말로 자연 진화에 걸맞은 방식이라고 그는 제안한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런 구성 자체를 통해, 다른 생물들을 인간에 견주어 ‘미완성’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현재 지구에 함께 사는 다양한 생물종들이 인간과 더불어 고유한 진화의 길을 걸어왔음을 증언한다.
순례단의 교통수단은 수십억 년을 압축하는 ‘타임머신’이며, 순례자 도킨스의 해설은 ‘생물 진화 다큐멘터리’를 거꾸로 돌리는 일과도 같다.
진화생물학의 ‘캔터베리 이야기’
순례자는 길을 떠나면서 다른 길을 거꾸로 걸어온 생물종들과 ‘공통 조상’의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하나둘씩 마주친다. 또 이들과 함께 더욱 앞서 존재했던 다른 공통 조상을 찾아 떠난다. 500만~700만년 전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침팬지를 만나고, 1400만년 전의 이정표 지점에선 오랑우탄과 함께 공통 조상을 만난다. 이런 식으로 뿌리 찾기는 계속된다. 갈수록 더 많은 생물종들이 순례길에 동참한다. 생쥐, 토끼, 두더지, 도롱뇽과 마주치고난 뒤 순례단 앞에 펼쳐진 시간의 길은 이제 땅을 벗어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허파로 호흡하는 폐어가 18번째 갈림길(4억1700만년 전)에 등장한 이후부터 물속으로 난 진화의 길에선 망둥어, 상어, 장어, 멍게, 갯지렁이, 해파리들이 공통 조상 찾기의 순례단에 가세한다. 그렇지만 모든 동식물 세포의 원형인 최초의 진핵세포(세포핵과 미토콘드리아를 갖춘 세포)를 만나는 37번째 갈림길부터 길은 흐릿해진다. 이 시기 이전의 세계는 인류의 과학지식이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제 거의 모든 지구 생물들이 동참한 거대 규모의 도킨스 순례단은 마침내 진핵세포와 고세균을 만나고 생명체가 원시적 유전물질로써 막 태어나는 ‘켄터베리’에 이른다. 새로운 갈림길에 도착할 때마다 관련된 진화론과 분자생물학, 지질학의 풍부한 이론과 지식을 동원해 그 시대와 새로 마주친 생물종을 소개하는 도킨스는 꼼꼼한 순례의 기록자이다. 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진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되돌아보는 성찰적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여행을 통해 지구 생물종들의 공통 조상을 찾아나서는 이 책은 놀랍게도 우리 인간이 기껏해야 40여 차례의 진화 이정표를 거치고 나면 그토록 머나먼 원시 생명체의 조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공통 조상을 만나는 ‘랑데부’는 39차례와 ‘원시 생명체의 탄생 시기’로 구성됐다. 그만큼 인간의 진화는 다른 생물종들과 그리 멀지 않은 친족관계임을 보여준다. 순례에 차례차례 참여한 모든 이들은 생김새가 아주 다르고 실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공통 조상들을 하나둘씩 확인하는 순간에 그들은 ‘지구 행성의 우리’가 된다. 각종 이론·풍부한 교양 녹여내
도킨스의 이 책은 진화 생물학과 관련한 갖가지 이론들을 집대성했다. 여러 진화 논쟁들을 소개하고 진화와 관련한 편견과 진실을 주장한다. 그는 순례 여행 도중에 사회적 발언도 쏟아낸다. 예컨대 인종차별의 비과학성을 주장하는 그의 글은 흥미롭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콜린 파월, 도널드 럼즈펠트가 백악관에서 함께 한 모습의 사진을 제시하며 지구인은 ‘백인 둘, 흑인 둘’로 나누겠지만, 화성인이라면 얼굴 흰 파월을 ‘백인 셋, 흑인 하나’로 말할지도 모른다는 익살을 부린다. 그는 “우리는 혈통이 섞여 어떤 인종이라고 말하는 게 무의미할 때에도, 심지어 이 (사진의) 사례에서처럼 신기할 정도로 인종 분류에 집착한다”고 꼬집으며 “유전적으로나 분류학적으로 무의미한 인종 분류는 사회관계나 인간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책의 모델이 된 <켄터베리 이야기> 외에도 여러 문학과 신화들의 이야기를 불러내어 순례길 중간중간에 들려주는 그의 능수능란한 입담과 교양지식도 읽는이를 즐겁게 할 만하다. 모든 생물의 유전물질인 디엔에이(DNA)는 4개의 ‘자모’이며 그 셋이 모여 이룬 유전암호의 ‘단어’(코돈)는 64가지에 불과하며 이것이 아미노산 20가지를 이룬다는 디엔에이와 문자의 비유나, 염기서열 분석과 생물종의 분류 방법이나 고전 문학작품의 출간 판본 분류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과 같은 그의 비유와 설명들은 서로 낯선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중재한다.
이밖에 진화 생물학에서도 이제는 중요하게 응용되는 유전체(게놈) 염기서열의 연구가 실제로 어떤 원리에 따라 이뤄지는지, 그리고 화석조차 남아 있지 않아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한 수십억 년 전의 과거를 과학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추론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설명들도 다른 책에선 쉽게 만나기 힘든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장구한 시간여행을 압축한 두툼한 책의 분량은 대중적 교양도서로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순례자는 길을 떠나면서 다른 길을 거꾸로 걸어온 생물종들과 ‘공통 조상’의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하나둘씩 마주친다. 또 이들과 함께 더욱 앞서 존재했던 다른 공통 조상을 찾아 떠난다. 500만~700만년 전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침팬지를 만나고, 1400만년 전의 이정표 지점에선 오랑우탄과 함께 공통 조상을 만난다. 이런 식으로 뿌리 찾기는 계속된다. 갈수록 더 많은 생물종들이 순례길에 동참한다. 생쥐, 토끼, 두더지, 도롱뇽과 마주치고난 뒤 순례단 앞에 펼쳐진 시간의 길은 이제 땅을 벗어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허파로 호흡하는 폐어가 18번째 갈림길(4억1700만년 전)에 등장한 이후부터 물속으로 난 진화의 길에선 망둥어, 상어, 장어, 멍게, 갯지렁이, 해파리들이 공통 조상 찾기의 순례단에 가세한다. 그렇지만 모든 동식물 세포의 원형인 최초의 진핵세포(세포핵과 미토콘드리아를 갖춘 세포)를 만나는 37번째 갈림길부터 길은 흐릿해진다. 이 시기 이전의 세계는 인류의 과학지식이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제 거의 모든 지구 생물들이 동참한 거대 규모의 도킨스 순례단은 마침내 진핵세포와 고세균을 만나고 생명체가 원시적 유전물질로써 막 태어나는 ‘켄터베리’에 이른다. 새로운 갈림길에 도착할 때마다 관련된 진화론과 분자생물학, 지질학의 풍부한 이론과 지식을 동원해 그 시대와 새로 마주친 생물종을 소개하는 도킨스는 꼼꼼한 순례의 기록자이다. 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진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되돌아보는 성찰적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여행을 통해 지구 생물종들의 공통 조상을 찾아나서는 이 책은 놀랍게도 우리 인간이 기껏해야 40여 차례의 진화 이정표를 거치고 나면 그토록 머나먼 원시 생명체의 조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공통 조상을 만나는 ‘랑데부’는 39차례와 ‘원시 생명체의 탄생 시기’로 구성됐다. 그만큼 인간의 진화는 다른 생물종들과 그리 멀지 않은 친족관계임을 보여준다. 순례에 차례차례 참여한 모든 이들은 생김새가 아주 다르고 실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공통 조상들을 하나둘씩 확인하는 순간에 그들은 ‘지구 행성의 우리’가 된다. 각종 이론·풍부한 교양 녹여내
도킨스가 현재 인간과 생물종들의 공통 조상을 찾아나선 시간여행 순례길에서 16번째로 마주친 공통 조상은 배를 깔고 걷는 도마뱀 닮은 동물(사우롭시드)이다. 파충류 조상들이 출현한 3억1000만년 전의 지구다. 그림 <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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