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노월 첫 소설집 <악마의 사랑>
잊혀진 작가 여섯 단편 되설려
1920~1925년 윤리와 도적에 맞서 쓴
노골적이고 일탈적인 사랑
결국 파멸·단죄의 대상으로 치닫아
‘임노월’을 아시나요?
어찌 들으면 기생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소리꾼 같기도 한 이 이름의 주인공은 소설가다. 본명은 ‘임장화.’ 1920년 1월 24일부터 29일까지 <매일신보>에 단편 <춘희>를 연재하면서 등장했다가 1925년 1월 1일 치 <동아일보>에 <무제>라는 이름으로 쓴 절필 선언을 끝으로 문단에서 모습을 감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생몰연도는 물론, 절필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없다. 남은 것은 <매일신보>와 동인지 <영대> 등에 발표한 일곱 편의 단편소설과 <사회주의와 인간의 영혼> <예술과 계급> 같은 평론, 그리고 몇몇 시와 수필 등이다.
김명순과 김원주(훗날 출가하면서 김일엽으로 개명) 같은 여성 문사들과 차례로 동거함으로써 문단사에는 이름을 올렸으나 문학사에서 그는 거의 잊혀진 존재와도 같았다. 단 한 권의 소설집도 남기지 않은 탓이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씨가 최근 엮어 낸 <악마의 사랑>(향연)은 그의 이름으로 나온 첫 책인 셈이다.
그제나 이제나 잠깐 활동하다가 종적을 감추는 작가는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임노월이 다른 숱한 ‘무명’ 작가들과 다른 것은 그의 소설들이 한국문학에서는 드물게 예술지상주의와 연애지상주의를 선명하게 표방한다는 점 때문이다. 80여년 전의 작품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소설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은 현대적이며 문제적이다. 그들은 합리주의와 윤리·도덕적 규범을 무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 꿈과 쾌락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려 한다. 작가는 이런 태도를 스스로 ‘신개인주의’라 이름하였다. 지배 질서라는 것이 결코 녹록치는 않은 것이니만치 그들이 표방하는 신개인주의가 안착할 가능성은 희박하겠거니와, 문단에서 스스로 물러난 작가처럼 그의 소설 주인공들 역시 종국에는 파멸하거나 단죄의 대상이 되는 식으로 현실적 패배를 맛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이 온몸을 던져 작성한 패배의 기록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관해, 개인과 사회, 자유와 책임의 관계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씨 엮어내
여섯 단편이 묶인 소설집 <악마의 사랑>에서 표제작과 <악몽>, 그리고 임노월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인 <처염>은 ‘팜 파탈’(요부)과 그로 인해 파멸하는 남자 주인공이라는 동일한 모티브를 지닌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인 ‘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인 여자에게 사로잡힘으로써 기존의 질서 및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은 파멸을 맞는다. ‘나’를 사로잡는 여자들은 “무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그러한 매력을 가진 이”(<처염>)거나 “한량없이 매력을 가진 요부”(<악몽>)여서 그와의 사랑은 “위험한 비극성을 가진 애정”(<악마의 사랑>)이 되리라는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치명적인 사랑에 기꺼이 빠져드는데, 그러할 때 ‘나’를 이끄는 심사는 “악이든지 선이든지 관계할 바는 아니”(<악마의 사랑>)며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희생한다는 결심”(<악몽>)이다. 못생긴 처와 매력적인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처를 살해하기에 이른 <악마의 사랑>의 주인공이 “사실상 나는 미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놓는 데 비해, 연적 관계에 있던 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악몽>의 주인공이 도달하는 결론은 사뭇 다르다. <악마의 사랑>에 기존 질서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면, <악몽>은 한결 노골적이고 도발적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라면 죄 될 것이 무엇인가? 인생은 모두 다 어지러운 꿈이다. 누구를 선하다 할 것도 없고 누구를 악하다 할 것도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대를 생각하는 내 맘과 나를 생각하는 그대 맘만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도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것이다.” 당대 조혼풍습·신여성등 도마위 사랑의 이름으로 동반자살하는 남녀를 등장시킨 짧은 단편 <지옥 찬미>에서는 악과 쾌락 사이의 필연적 상관성이 한층 결연하게 주창된다. 남자 주인공은 “심각한 쾌락은 대개 도덕적 정조를 초월하는” 것이며 “선인(善人)이 요구하는 쾌락은 단조한 것이지만 악인이 요구하는 쾌락은 항상 경이를 찾기 때문에 미감(美感)에 대한 광폭한 형식을 좋아”한다는 말로 천당에 대한 지옥의 우월성을 역설한다. 화자와 작가 역시 “달빛에 비치는 두 청춘의 어여쁜 시체에서는 두 혼이 가볍게 나와서 지옥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지옥 만세”라는 노골적인 결구로써 주인공 남자의 손을 들어준다. 남은 두 작품 <위선자>와 <춘희>는, <악마의 사랑>과 함께, 작가 당대의 커다란 사회문제였던 조혼 풍습과 신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이 세 작품의 남자 주인공들은 공히 먼저 결혼했던 부인과 새롭게 만난 매력적인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의 처를 사랑하는 이외에 춘희 씨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 죄악인가?”라는 <춘희>의 남자 주인공 병선의 독백은 이들의 고민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음이다. 그것이 ‘죄악’임을 세 작품의 결말은 다양하게 보여준다. <악마의 사랑>에서 남자는 부인을 죽이고 애인과는 헤어지며, <위선자>에서는 어거지로 이혼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믿었던 애인이 배신하는 사태에 맞닥뜨리고, <춘희>에서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애인을 질병에 빼앗기기에 이른다. 엮은이 방민호씨에 따르면 임노월은 20년대 문단의 맹주였던 이광수의 계몽주의는 물론 계급주의적 문학관과도 심각한 마찰을 빚었으며 그의 돌연한 절필도 이런 정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30년대 모더니스트 이상의 ‘선배’이자, 지나치게 선구적인 면모로써 시대와 불화한 비운의 천재로 보이기도 한다. 소설집 <악마의 사랑>은 이 잊혀진 작가에게 정당한 문학사적 위치를 부여해 줄 것을 요청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구스타브 클림트가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을 요부 이미지로 그린 <유디트 1>. ‘잊혀진 작가’ 임노월의 소설에는 남자를 유혹해서 결국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요부형 여자들이 등장한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라면 죄 될 것이 무엇인가? 인생은 모두 다 어지러운 꿈이다. 누구를 선하다 할 것도 없고 누구를 악하다 할 것도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대를 생각하는 내 맘과 나를 생각하는 그대 맘만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도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것이다.” 당대 조혼풍습·신여성등 도마위 사랑의 이름으로 동반자살하는 남녀를 등장시킨 짧은 단편 <지옥 찬미>에서는 악과 쾌락 사이의 필연적 상관성이 한층 결연하게 주창된다. 남자 주인공은 “심각한 쾌락은 대개 도덕적 정조를 초월하는” 것이며 “선인(善人)이 요구하는 쾌락은 단조한 것이지만 악인이 요구하는 쾌락은 항상 경이를 찾기 때문에 미감(美感)에 대한 광폭한 형식을 좋아”한다는 말로 천당에 대한 지옥의 우월성을 역설한다. 화자와 작가 역시 “달빛에 비치는 두 청춘의 어여쁜 시체에서는 두 혼이 가볍게 나와서 지옥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지옥 만세”라는 노골적인 결구로써 주인공 남자의 손을 들어준다. 남은 두 작품 <위선자>와 <춘희>는, <악마의 사랑>과 함께, 작가 당대의 커다란 사회문제였던 조혼 풍습과 신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이 세 작품의 남자 주인공들은 공히 먼저 결혼했던 부인과 새롭게 만난 매력적인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의 처를 사랑하는 이외에 춘희 씨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 죄악인가?”라는 <춘희>의 남자 주인공 병선의 독백은 이들의 고민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음이다. 그것이 ‘죄악’임을 세 작품의 결말은 다양하게 보여준다. <악마의 사랑>에서 남자는 부인을 죽이고 애인과는 헤어지며, <위선자>에서는 어거지로 이혼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믿었던 애인이 배신하는 사태에 맞닥뜨리고, <춘희>에서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애인을 질병에 빼앗기기에 이른다. 엮은이 방민호씨에 따르면 임노월은 20년대 문단의 맹주였던 이광수의 계몽주의는 물론 계급주의적 문학관과도 심각한 마찰을 빚었으며 그의 돌연한 절필도 이런 정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30년대 모더니스트 이상의 ‘선배’이자, 지나치게 선구적인 면모로써 시대와 불화한 비운의 천재로 보이기도 한다. 소설집 <악마의 사랑>은 이 잊혀진 작가에게 정당한 문학사적 위치를 부여해 줄 것을 요청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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