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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윤동주 후배 정병욱이 ‘백영’을 호로 쓴 까닭은?

등록 2017-03-30 20:23수정 2017-03-30 20:43

친절하게 풀어쓴 문학 안내서들
권영민 김명인 금정연 정지돈 등
이야기와 에세이, 대담 형식 택해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
권영민 지음/해냄·1만5000원

부끄러움의 깊이
김명인 지음/빨간소금·1만2000원

문학의 기쁨
금정연·정지돈 지음/루페·1만4800원

젊은 감각을 앞세우며 새로 나오는 문학잡지들에서 평론이 사라지고 서평으로 대체되는 현상은 징후적이다. 지지난해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을 겪으면서 평론의 위상과 유효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데다, 일반 독자의 관심과 눈높이를 무시한 채 그들만의 어휘와 맥락으로 철옹성을 쌓아 온 후과일 것이다.

딱딱한 평론과 달리 쉽고 친절하게 독자를 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서 세권이 그래서 반갑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의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와 김명인 인하대 교수의 <부끄러움의 깊이>, 서평가 금정연과 소설가 정지돈이 협업한 <문학의 기쁨>이 그것들. 이 책들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글쓴이들의 인간적 면모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세대별 감수성의 차이도 느끼게 한다.

<…문학 콘서트>는 권 교수가 2012년 서울대에서 퇴직한 뒤 같은 이름으로 행한 대중 강연과 문학 현장 탐방기를 한데 모은 것이다. 평생 연구자이자 교육자, 평론가로서 쌓아 온 문학 내공을 대중 독자들 눈높이에 맞추어 풀어 놓는다.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의 고향 집 양조장 독 안에 감추어 두었던 윤동주의 시집 원고가 해방 뒤 가까스로 빛을 보게 된 사연을 들려주면서 윤동주 시에 나타난 “식민 현실”과 “비극적 상황”을 설명하는 식이다. 나중에 고전시학 연구자가 된 정병욱이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에서 따온 ‘백영’(白影)을 자호로 삼아 선배의 고결한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는 뒷이야기도 아름답다.

이상이 말년의 도쿄 시절을 담아 쓴 유일한 소설 ‘실화’(失花) 후반부에 등장하는 술집 ‘노바’(NOVA)를 찾아 신주쿠 뒷골목을 헤매던 권 교수는 대신 당시 도쿄 유학생이 쓴 시 ‘바·노바’를 발견한다. 조선 유학생들의 문학잡지 <탐구> 창간호(1936. 5)에 실린 이 시의 작자 주영섭이 ‘실화’ 앞머리에 나오는 유학생 ‘시’(C)일 가능성이 크며 ‘실화’에 등장하는 술집 노바의 풍경 역시 이 시를 소설적으로 변용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이밖에도 지은이가 가난한 대학생 시절 청계천 헌책방에서 기적처럼 손에 넣은 정지용 시집 <백록담>(1941) 초판본, 도쿄 간다 고서점에서 만난 평론가 백철의 격렬한 일본어 투쟁 시들, 심훈 아들이 미국 자택에 보관하고 있는 시집 <그날이 오면>과 소설 <상록수> 등의 친필 원고본 이야기 등이 두루 재미지다.

<부끄러움의 깊이>는 “한물간 비평가”를 자처하는 지은이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문학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주제에 관해 일기 쓰듯 편하게 쓴 글들이라 손이 가는 대로 아무 데나 펼쳐 읽기에 좋다. 지지난해 문학권력 논쟁 과정에서 쓴 어느 글에서 “나는 한국 문학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매몰찬 소리도 했던 그가 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읽고는 “실망과 좌절, 자폐와 침잠, 원망과 자해, 동요와 주저의 긴 터널을 지나 소설이, 문학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설레는 모습은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설레게 만든다.

최인석 소설 <연애, 하는 날>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비교하면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적대하는 두 계급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후자에는 있었던 반면(신애, 지섭, 윤호) 전자에는 없다는 차이를 확인한 그는 그것을, 지난 40년 동안 변혁운동세력의 자멸 또는 기득권 세력화의 결과라 파악한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읽는 나에게 제일 아프고 무서운 지점이며, 이 소설의 뒷맛이 쓰디쓴 가장 큰 이유이다.”

<문학의 기쁨>은 두 지은이가 당대 문학에 관해 나눈 대화를 젊은 세대 특유의 발랄한 어조와 형식에 담았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김태용의 소설이 “생각보다 평범하고 보편적이기까지 하다”든가, 고액 상금을 내건 신인 장편소설 공모에서는 “결국 동글동글한 작품만 뽑힐 공산이 크다”는 관찰 등 새겨들을 말이 적지 않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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