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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월호 비극에 맞선 아름다운 사람들

등록 2017-04-06 19:28수정 2017-04-06 20:19

김탁환 연작소설집 ‘아름다운 그이는…’
‘목격자들’ ‘거짓말이다’ 이은 세월호 소설
“작은 기쁨 하나로 큰 슬픔 견디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지음/돌베개·1만3000원

김탁환은 2015년 2월, 조선 시대 조운선 침몰 사건에 빗대어 세월호 참사를 고발한 두권짜리 장편 <목격자들>을 냈고, 지난해 8월에는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희생자들 주검을 수습한 민간 잠수사 이야기를 그린 장편 <거짓말이다>를 출간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알리고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가 새로 낸 책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는 세월호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집이다.

“소설을 아무리 잘 써봤자 뭘 해? 아이들은 죽어버렸고, 아이들 버려두고 살아 돌아온 놈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또 살아. 내 문장은 때늦은 한숨 같아. 이깟 한숨, 이러니저러니 늘어놓는 게 싫어. 난 자격 없어.”

<아름다운 그이는…>의 수록작 ‘소소한 기쁨’에서 세월호 사태를 소설로 쓰던 작가 탁모독은 편집자와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자학하듯 한탄한다. 이 인물에는 많건 적건 작가 김탁환 자신의 면모가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편집자에게 퍼붓다시피 늘어놓은 하소연 역시 어느 정도는 작가 자신의 것으로 볼 수도 있으리라.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쓸 때 작가의 심정이 탁모독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렇듯 참담한 심사를 담아 쓴 소설들에 작가는 어쩌자고 ‘아름다운’ 운운하는 제목을 단 것일까.

세월호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 소설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를 낸 소설가 김탁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월호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 소설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를 낸 소설가 김탁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한겨레> 자료사진
책에 담긴 이야기들 모두가 2014년 4월16일 그 일을 바탕에 깔고 있는 만큼 극도의 슬픔과 고통을 수반함은 물론이다. 물이 차오르는 선실에 남겨진 여학생이 밖으로 탈출한 사람을 향해 “아저씨! 난 어떻게 해요?”라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질 때(‘눈동자’), 주검을 거두고자 객실에 들어간 잠수사들이 서로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한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할’), 하필 회사 일이 바빠서 죽기 전 아이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을 자책하느라 아예 말문을 닫아건 엄마와 마주칠 때(‘찾고 있어요’) 독자는 아린 통증과 어찌할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진한 어둠 속에서 빛이 더 환해 보이듯 참혹한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순간을 찾을 수 있고 또 찾아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유족과 함께 나누던 변호사 출신 정치인의 선거운동에 인형 탈을 쓰고 나선 유족들(‘이기는 사람들’)이라든가 지난 1월17일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발언한 생존 학생들(‘마음은 이곳에 남아’)처럼 실제 이야기가 주는 감동을 소설로 옮겨 온 것들이 있는가 하면, 작가가 4·16 팟캐스트 등에서 접한 이야기를 소설적으로 변형시키거나 순전히 상상으로 꾸민 것들도 있다. <거짓말이다>의 모델인 고 김관홍 잠수사처럼 자살을 결심한 세월호 잠수사가 유족과 만난 일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어 이번에는 산사태로 파묻힌 동굴 속 사람을 구하러 내려가는 ‘할’의 결말에서도, 2025년 4월16일 그 자신 스물아홉살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 우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세월호 생존 학생의 미래 이야기(‘제주도에서 온 편지’)에서도 절망과 슬픔을 딛고 솟아오른 아름다움의 빛은 선연하다. 아들의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어 달라는 세월호 희생자 학생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고자 최선을 다하는 공항 직원(‘돌아오지 않는다면 여행은 멋진 것일까’) 역시 작가가 찾아낸 참혹함 속 아름다움의 사례라 할 것이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신영복 선생의 이 말은 책 앞에 제사(題詞)처럼 실렸으며 ‘소소한 기쁨’에도 다시 등장한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를 쓸 때 작가가 이 말에 크게 의지했을 것으로 짐작되거니와, 세월호 유족은 물론 “나라 초상”(고은)을 당한 우리 모두에게 “작은 기쁨” 삼아 건넨 선물이 이 소설집이 아닐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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