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다산책방·1만4000원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사진)의 소설 <시대의 소음>(2016)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75)의 삶을 다룬다. 그는 소련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경직된 이념으로 예술을 재단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활동이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반스는 정치 권력과 예술이 부딪치는 양상을 보여주고자 쇼스타코비치 삶의 세 장면을 뽑아낸다.
첫 장 ‘층계참에서’는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1936)을 관람하던 스탈린이 공연 도중에 자리를 뜨고 뒤이어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며 작품을 비판하는 기사가 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실린 일과 관계된다. 바야흐로 ‘피의 숙청’ 시기. 언제라도 비밀경찰에 끌려갈 수 있다는 생각에 쇼스타코비치는 여행가방을 꾸려 아파트 승강기 옆 층계참에서 대기한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체포되는 모습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며칠이고 하염없이. “그것은 바로 도시 전역에서 매일 밤 체포되기를 기다리는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체포와 숙청을 면한 그는 이듬해 교향곡 5번을 내놓으면서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의적 답변’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한때 ‘인민의 적’으로까지 불렸던 쇼스타코비치의 화려한 복권이었다. 그러나 1949년 미국 방문은 또 다른 고비였다. 그는 당국이 대신 작성한 연설문에서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을 신봉한 음악가들을 비판해야 했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그가 존경하는 스트라빈스키였다. 2장 ‘비행기에서’의 내용이다.
마지막 3장 ‘차 안에서’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해빙’ 무드가 펼쳐지던 1960년을 배경 삼는다. 스탈린 시대와 달리 어느 정도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기였지만, 권력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예술가를 옥죄어 온다. 달라진 시대 분위기에 대한 상징으로 당국은 쇼스타코비치를 소련 작곡가 조합 의장 자리에 앉힐 생각이고 그를 위해 비 당원이었던 그에게 공산당 입당을 권유한 것. ‘사람을 죽이는 당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공언해 왔던 그는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쉬웠다.” 그는 겁쟁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고, 아이러니를 생존술로 삼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죽이는 대신 살려놓고, 살려둠으로써 그를 죽였다”는 문장에서 보듯, 아이러니의 세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종종 모호했다. ‘블랙리스트’가 언급되는가 하면 친일 문학가들의 실존적 고뇌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예술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최재봉 기자, 사진 다산책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