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미회상록 1, 2
김원우 지음/글항아리·각 권 1만8000원
“민영익은 매우 내성적인 인물입니다. 타고난 미의식으로 글씨와 그림에서 일가를 이루었어요. 예술가 특유의 비사교성으로 침묵을 지키면서도 눈치가 빨랐죠. 비정치적이면서도 정치적 성향을 지닌 독특한 인물이었는데, 그런 내성적 인물이 관찰한 조선의 한계를 그려 보았습니다.”
작가 김원우가 구한말 풍운아였던 운미 민영익(1860~1914)의 일대기를 다룬 두 권짜리 소설 <운미회상록>을 내놓았다. 민영익은 명성황후 민비의 오빠인 민승호의 양자로 입양됨으로써 민비의 친조카가 된 이다. 호조참판과 이조참판 같은 요직을 거쳤으며 초기에는 개화파에 호의적이었으나 나중에는 김옥균 등 친일 개화파와 거리를 두었고 결국 김옥균이 주도한 갑신정변(1884) 때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전해에는 조선보빙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을 접견했으며, 미국 방문 뒤에는 유럽과 이집트, 인도, 싱가포르 등을 경유하는 최초의 ‘세계일주’를 한 한국인으로도 기록된다.
구한말 척족이자 풍운아였던 운미 민영익의 일대기를 담은 소설 <운미회상록>을 낸 소설가 김원우. “김모 소설은 어렵고 인기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과 문단에 원한이 많아서 복수하고자 썼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9일 서울 강동구 길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원우는 “곳곳에 내 상상력과 환상이 들어갔지만 반 정도는 사실에 기반했다”며 “기왕의 역사 해석보다 사실에 더 가깝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3년 민영익 집 청지기였던 고영근을 주인공 삼은 6권짜리 소설 <우국의 바다>를 낸 바 있다. 고영근은 이번 소설에도 등장한다. 이번 소설에서 특징적인 것은 갑신정변 당시 정적이었던 김옥균에 대한 민영익의 태도에 작가 자신의 감정을 많이 투사했다는 점이다.
“김옥균이 주도한 갑신정변은 애초부터 성공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민영익은 그걸 알고 있었어요. 김옥균은 과거에서 장원급제했다는 자만심만 믿고 날뛰면서 즉흥적인 판단에 휘둘리는 도박꾼 기질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민영익의 회고 형식을 띤 소설에서 김옥균과 갑신정변에 대한 비판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김옥균의 총명은 대체로 너무 일방적이고, 제 편리한 대로 사세를 ‘오해’하는 데 능수였다.”
“갑신정변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름꾼으로서 그의 즉흥적인 결단력 때문에 처절히 패망의 길을 줄여 밟았다는 내 생각을 다시 확인시켜준 과단성이 아닐 수 없다.”
<운미회상록>은 김옥균과 개화파를 바라보는 주인공 민영익의 태도만큼이나 작가 자신의 비판 정신이 날카로운데다 흔히 쓰지 않는 낯선 어휘가 많아 읽기에 수월하지는 않다. 작가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 독자들은 무식해서 ‘김모의 소설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알고 보면 어렵지 않은데 말이죠. 제 소설은 워낙 인기가 없어서 문학잡지에서 청탁이 오지도 않고 원고를 써도 출판할 데가 없는 형편입니다. 결국 문학 출판사가 아닌 글항아리에서 이번 소설을 내게 되었어요.” 글항아리에서는 앞서 그의 소설창작론인 <작가를 위하여>와 일본문화론 격인 <일본 탐독>이 나왔다.
운미 민영익의 일대기를 담은 소설 <운미회상록>을 낸 소설가 김원우.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의 신랄한 비판은 독자와 출판사만이 아니라 동료 작가들에게도 향한다.
“소설이란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지 않으면 음풍농월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느닷없이 여행을 가고 연애를 하는가 하면 제 아버지와 어머니 자랑이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소설들이 너무 많아요. 하긴 독자들이 그런 실없는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요.”
2012년 8월 계명대에서 정년퇴직한 그는 요즘은 집 근처 작업실로 출퇴근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규칙적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휴대폰 애무 시대’가 못마땅한데다 쓸 데도 없어서 휴대전화는 사용하지 않는다. 작업실 유선전화조차 일주일에 한번도 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77년 문단에 나와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은 그는 “등단 몇십년이니 따위 우습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잘라 말하며 “꼭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밥벌이’ 삼아 1년에 한 권 정도는 책을 낸다는 생각으로 소설이든 다른 장르든 꾸준히 쓰려 한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