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 1, 2
황석영 지음/문학동네·각 권 1만6500원
“정말 옆을 돌아보지 않고 화살처럼 앞으로만 내달아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 달도 편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화살처럼 내달리느라 나 자신도 상처를 입었지만 주변에도 많은 상처를 주었을 겁니다. 이 책을 쓰는 일은 그간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지를 성찰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작가 황석영은 자전 에세이 <수인>을 내고 8일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자신의 말마따나 그의 삶은 파란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흡사 개인적 성정과 시대 상황이 힘을 합쳐 그의 등을 떠다미는 형국이었다.
자전 에세이 <수인>을 내고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작가 황석영. “삶의 결정적인 국면마다 문학이라는 목표나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 왔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만주 창춘에서 태어나 해방 뒤 평양 외가로 내려온 그는 삼팔선이 그어지던 무렵 월남해 서울 영등포에 정착했다. 고교 2학년으로 맞은 4·19 때 가까운 친구가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명문 경복고를 자퇴하고 집을 나가 남도를 떠돌다 돌아와서는 <사상계>에 단편 ‘입석부근’으로 신인문학상을 받는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고, 그 뒤 뜨내기 노동자 생활을 거쳐 승려가 되겠다며 머리를 깎았다가 어머니에게 붙잡혀 서울로 올라온다. 성인이 된 뒤에도 베트남전 참전과 노동운동, 결혼, 광주 5·18 민주화운동, 유럽과 일본, 미국 등지에서의 문화운동, 북한 방문 이후 독일 베를린과 미국 뉴욕의 망명 생활, 귀국 후 5년 복역 등의 굵직굵직한 일들이 그의 삶을 통과해 갔다. ‘객지’ ‘한씨연대기’ <장길산> <무기의 그늘> <손님> 같은 소설들이 그토록 분주한 삶의 틈새에서 빚어져 나왔다.
<수인>은 영등포의 유년기에서부터 1998년 출옥까지 반세기 남짓한 세월을 1·2권 합쳐 1000쪽 가까운 두툼한 분량에 담았다. 1993년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자마자 안기부에 끌려가 수사관들에게 취조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책은 감옥에서 보낸 5년을 6개의 짧은 장에 담고, 그 사이사이에 지난 시절 회고담을 배치하는 식으로 짜였다. 취조와 기소를 담은 프롤로그에 이어, 광주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집필자로 이름을 올린 일 때문에 해외에 머물게 되었던 1985~6년을 다룬 ‘출행’, 그리고 1989년 북한 방문과 그로 인한 망명 생활을 담은 ‘방북’과 ‘망명’이 오며, 그 이후에야 유년기 이후 삶의 여정이 시간 순서대로 서술된다.
황석영 작가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설가온에서 열린 <수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제목 ‘수인’(囚人)은 일차적으로는 5년의 옥살이와 관련되지만, 더 크게는 작가의 지난 삶 전체를 가리키는 비유적 의미로도 읽힌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이 이러하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수인>을 읽는 즐거움의 하나는 ‘입석부근’ ‘객지’ <모랫말 아이들> <개밥바라기별> 같은 그의 자전적 소설들의 배경을 이루는 경험을 날것 그대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를 옥에 가둔 직접적 원인이 된 북한 방문 이야기는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로도 나와 있지만, <수인>에서는 특히 김일성 주석과 만나 나눈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박헌영 숙청에 대해 회한을 느끼고, 정주영 같은 기업인을 매판독점자본가로 보는 대신 ‘돈 버는 재간’을 평가한다든가, 북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견해를 청해 듣고 공감을 표하는 등의 인간적 면모를 소개하면서도 “북한 인민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고, 권력을 세습해 독재의 토양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소설가를 꿈꾸는 아들을 말리셨던 어머니”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헌사를 쓴 작가는 “결국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문학이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처음으로 직접 전투에 직면했을 때에도 ‘살려만 주시면 꼭 좋은 글을 쓰고 죽겠다’고 밤새 기도했습니다. 망명 시절에도, 감옥 생활 중 징벌방에서 20일 동안 단식하면서도 ‘반드시 살아남아서 이 일을 글로 쓸 거야’라고 다짐하면서 버텼어요. 돌이켜 보면 문학은 내 집이었던 셈입니다. 떠나 있으면서도 문학이라는 집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어요. 어둠 속에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문학이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