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스케드 피어슨 지음, 김일기 옮김/뗀데데로·2만5000원 찰스 디킨스(1812~70)는 상업성과 작품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영문학사상 가장 모범적이고 행복한 작가로 꼽힌다. 구두쇠 스크루지로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럴>, 고아 소년 올리버가 런던 뒷골목 소매치기 일당 손아귀에서 갖은 고생을 겪지만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오가며 프랑스 혁명과 그 여파를 그린 <두 도시 이야기>, 그리고 <데이비드 코퍼필드> <어려운 시절> <위대한 유산> 등등. 월간으로 연재한 그의 첫 소설 <피크위크> 시리즈는 숱한 캐릭터 상품을 낳았고 불법 복제와 도용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인기는 영국에서만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까지 이어져서,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 연재될 때에는 최신호 잡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이들이 배에 다가가 “어린 넬이 죽었소?”라고 소리쳐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영국의 배우 출신 전기 작가 헤스케스 피어슨(Hesketh Pearson)이 쓴 <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Dickens: His Character, Comedy and Career, 1949)은 디킨스의 배우 기질을 중심에 놓고 그의 삶을 조망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셰익스피어는 배우로 태어나 작가가 됐고, 디킨스는 작가로 태어나 배우가 됐다.” 디킨스는 배우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며 이 재능을 허구적 인물을 창조하는 데 사용했다. 그 덕분에 어느 작가보다 생생하고 현실감이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디킨스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할리우드를 발 아래 두고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군림했을 것”이라고 피어슨은 쓴다. 그 자신 배우 출신인 지은이는 마치 디킨스를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하고 개성 넘치는 필치로 묘사한다. “디킨스는 여자 같이 고운 피부를 가진데다 옷도 맵시 나게 잘 차려입고 다녔지만,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은 예술가라기보다 열정적이고 현실적인 실무가에 가까웠다. 움직임에는 활력이 넘쳤다. 행동거지가 씩씩하고 활기차고 단호했으며, 우뚝한 콧날과 두둑한 콧방울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영국 남부 포츠머스에서 태어나 열살 때 런던으로 이주한 뒤 평생 이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디킨스는 “런던 그 자체였다”고 지은이는 썼다. “디킨스는 자신을 런던과 동일시하면서, 런던을 쌓아 올린 벽돌과 회반죽처럼 런던의 일부가 됐다. (…) 디킨스는 장소를 주제로 다룬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생의 후반부에 그는 소설 낭독회를 통해 자신의 배우 기질을 한껏 분출했다. “한 캐릭터에서 다른 캐릭터로 넘어갈 때마다 디킨스는 물리적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목소리와 생김새, 표정,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 중년, 런던내기, 촌놈, 군인, 해군, 의사, 성직자, 법조인, 귀족 등등 족히 스무개나 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낭독회 입장권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매표소 앞에서 밤을 새웠고, 암표가 원가의 수십배를 호가하면서 투기꾼들까지 몰려들었다. 이런 인기에 고무되어 그는 마지막 12년 동안 무려 423회나 낭독 공연을 했고, 그것은 결국 그의 건강을 해치기에 이른다. “모르긴 해도 낭독회 때문에 수명이 십년은 단축됐을 것”으로 지은이는 추측한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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