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권석천 지음/창비·1만8000원 법의 이름으로 멀쩡한 사람들을 죽이고 가뒀다. 박정희 시대의 사법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선고 뒤 18시간 만에 8명이 이슬로 사라졌다.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9일을, 국제법학자협회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원은 재심을 통해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과 구금을 인정하고 손해를 배상했다. 파면된 대통령 박근혜 정부의 대법원은 배상이 과했다며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배상금을 토해내라고, 다 갚을 때까지 20% 이자도 내라고 판결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법원을 뜻하는 ‘코트’(court)를 붙여 특정 대법원장의 재임기를 구분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오는 9월 새 대법원장이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양승태 코트’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는 눈엣가시 같은 판사들을 쫓아내고, 한직으로 내몰고,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한 양승태 코트 비판으로 문을 연다. 지은이 권석천 <제이티비시> 보도국장은, 다양성이 사라진 ‘서오남’(서울대출신 오십대 남성) 대법관들이 원세훈을 살리고 전교조를 죽이는 등 보수사법, 관료사법으로 되돌아갔다고 꼬집는다. <대법원…>의 대부분은 그 직전 ‘이용훈 코트’를 반추하는 데에 할애했다. 국민참여재판과 공판중심주의 등 사법개혁을 위한 지난한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이 어떻게 공격당하고 좌절됐는지 등을 그렸다. 이용훈·노무현·문재인의 만남, ‘독수리 5남매’라 불린 대법관들이 새로운 판례를 만들고 빛나는 소수의견을 낳는 과정 등도 담았다. 이용훈 코트는 오래된 현재이자 먼저 온 미래일 수도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