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2017)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 전작주의자가 되는 일은 웬만한 열의로는 쉽지 않다. 작가에 대한 존경은 기본이고, 좋아할 수 없는 점도 견뎌야 한다. 더욱이 다양한 필명으로 여러 장르의 작품을 많이 쏟아낸 작가라면, 전권을 다 읽고 별점을 매기며 감상을 요약하려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 그 과업을 이루어낸 평론가가 있다. 일본 추리소설 평론가인 시모쓰키 아오이, 그는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단지 일곱권밖에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권 읽기에 도전한다. 이 결과를 2009년 10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장장 3년6개월에 걸쳐 ‘번역 미스터리 대상 신디케이트’ 웹사이트에 연재했고, 그 연재물을 모은 책이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이다. 포와로와 미스 마플, 토미와 터펜스 등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명 탐정들이 등장하는 시리즈는 물론, 단편집, 희곡, 메리 웨스트매콧의 이름으로 쓴 여성소설, 그 외 별개로 독립된 작품들과 자서전까지, 모두 아흔아홉권에 대한 평론 모음이다. 이 평론집은 세가지 관점에서 유용하다. 먼저,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고 즐기는 독자에게는 자신의 감상과 비교할 기회를 준다. 가령, 나는 작가가 별 다섯개를 준 <깨어진 거울>이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 아픈 범죄 비극”(209쪽)이라는 평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별 두개를 받은 <살인을 예고합니다>가 “따분한 추리소설”(188쪽)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작품 속에 깔린 인간관계의 역학도 흥미롭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잡담에서 단서를 발견하는 방식은 다른 코지 미스터리의 전범이라고도 할 만하다. 하지만 작가와 의견이 어긋나는 부분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크리스티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두번째, 이 책은 크리스티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에게는 훌륭한 가이드가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크리스티는 어떤 작품을 읽어도 대체로 재미있지만, 수작부터 시작한다면 더 만족스럽게 탐험할 수 있는 작가이다. 맛보기로 알려준다면, 작가가 꼽은 베스트 10 중 10위는 <서재의 시체>이며 2위는 <다섯 마리 아기 돼지>이다. 1위는 책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세번째, 이 책은 추리 평론을 쓰고 싶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교본이 될 만하다. 추리소설 리뷰어로서 가장 큰 난관은 내용을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추리소설 특성상 자칫 설명이 지나치면 흥미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설명하지 않고서는 평을 할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리뷰들은 추리소설 평론의 딜레마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동시에, 영어권 및 일본 추리소설의 역사를 훑으며 크리스티 각 작품의 맥락을 성실히 짚는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한 사람의 열정의 산물이라는 것이 아닐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성실한 애정, 그리고 거장에 대한 경의가 책 전체에서 흘러넘친다. 꼭 크리스티의 작품이 아니라도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추리소설에 대한 즐거운 기억들로 흐뭇해지는 기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박현주 번역가,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