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건다
정홍수 지음/창비·1만4000원
정홍수(사진)는 따뜻하고 애정 어린 소설 읽기로 호가 난 평론가다. 출판사를 운영하느라 20년 남짓한 활동 기간에 평론집은 두권을 묶어 냈을 뿐이다. 두번째 평론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으로 지난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자 누구보다 작가들이 제 일처럼 기뻐했다.
그의 첫 산문집 <마음을 건다>는 신문과 온라인 매체에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칼럼이라고는 해도 시사 현안보다는 문학과 영화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내게는 아직 좋은 영화를 찾아서 보고 싶고, 좋은 문학작품을 찾아서 읽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책 안에서 그는 고백한다. 더 나아가 “내게는 어느 지점에서 그 둘(=영화와 문학)은 하나다”라고도 한다.
문학 특히 소설과 영화는 서사 장르라는 점에서 통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같은 문학이라도 언어의 조탁에 더 치중하는 시라든가 평면적인 그림, 또는 추상적인 음악과 달리 삶과 세계를 좀 더 직접적이고 입체적인 이야기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정홍수가 그 두 장르에서 중시하는 것은 뜻밖에도 ‘거리’다.
“‘고통’과의 거리를 앓는 일 또한 문학의 몫일 테다. 문학의 능력을 과장할 이유야 전혀 없는 것이지만, ‘증언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아포리아’는 언제든 문학의 시련이자 도전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감독은 마을 동구의 나무, 비, 골목, 집, 바람이 이루는 세상의 무심한 풍경, 그 시간 속에서 자신만이 찾아낸 슬프지만 담담한 카메라의 거리를 통해 보여준다.”
역사의 합목적성에 회의적이며, 작품을 통한 직접 발언보다는 잔상과 효과로 스며드는 식의 울림을 더 신뢰하는 그에게 어쩌면 ‘거리’는 문학성과 예술성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인용한 문장들에서 “~ㄹ 테다”와 “~듯하다”라는 종결구는 주저하고 삼가는 태도로써 그가 생각하는 ‘거리의 예술론’을 몸소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술 덜 깬 눈으로 바라보는 흐릿한 세상의 풍경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문장은 술꾼의 항변이라기보다는 여유와 너그러움을 향한 호소로 읽어야 옳다.
시인이나 작가와 달리 개인사와 신변의 노출에 소극적인 평론가의 산문이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는 지은이의 삶의 내력과 현주소를 어느 정도 접할 수 있어 반갑다. 보도연맹 학살 때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정강이뼈 양쪽이 다 뭉개졌던 부친, 삼중당문고와 동서그레이트북스로 입문한 문학의 세계, 첫 직장이었던 민음사 편집자 시절 강렬했던 글쓰기를 향한 열망, 영상자료원의 무료 영화 관람과 한강변 산책 등이 그 세목들이다.
최재봉 기자, 사진 창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