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신석정문학상 수상자 공광규 시인. “시가 잘 읽히려면 표현이 정확해야 한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어려운 시는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신석정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한겨레신문사가 후원하는 제4회 신석정문학상에 공광규 시인의 시집 <담장을 허물다>(창비)가 선정되었다. 신인상인 신석정촛불문학상에는 심옥남(작은 사진) 시인의 시 ‘표면장력’이 뽑혔다. 시인 문효치·정희성·김종 등 심사위원들은 29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 심사에서 이렇게 결정했다.
문효치 시인은 수상작인 공광규 시집을 두고 “서정성과 서사성을 아울러 지녔으며 간결하고 핵심을 짚어 가는 솜씨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정희성 시인은 “근래 읽은 시집 가운데 가장 우수한 시집”이라며 “특히 표제작 ‘담장을 허물다’는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요즘 우리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이렇게 시작하는 표제시는 시인·문학평론가 등 120명이 선정한 2013년 최고의 시에 뽑혔고 어린이용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졌다.
“이 시는 어느 해 청주에서 보은 쪽으로 가던 길에 언덕에 있는 담장 허물어진 집을 보고 착상했어요. 마침 제 고향집 역시 담장이 반쯤 허물어진 상태였지요. 이 시에 대해서는 길다는 말도 있지만(전체가 6연 26행), 저로서는 스케일이 크고 호방한 시를 써냈다는 만족감이 듭니다.”
제4회 신석정문학상 수상자 공광규 시인. “시가 잘 읽히려면 표현이 정확해야 한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어려운 시는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사 다음날인 30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공광규 시인은 “편집자와 상의하면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덜 차면 가차없이 덜어냈기 때문인지 시집 전체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들었다”며 “표제작이 가장 마음에 들고 다음으로는 시집 맨 앞에 실린 ‘별 닦는 나무’에 마음이 간다”고 소개했다. 이런 시다.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 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별 닦는 나무’ 전문)
“신석정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으며 지조를 지키셨고 5·16 때도 자신만의 저항정신을 보여준 분입니다. 그런 선생님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친일문학상과 비교해 보면 특히 그렇죠.”
그는 얼마 전 <프레시안>에 ‘왼쪽 바짓가랑이가 자주 젖는다’라는 시와 시작 노트를 기고했다. 시에서는 좌파 문인들의 이중적이고 퇴행적인 행태를 비판했고, 시작 노트에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 등 친일 문인 문학상을 대하는 문인들의 태도를 꼬집었다.
공광규 시인은 수상작 <담장을 허물다>에 이어 얼마 전 일곱번째 시집 <파주에게>(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이 시집의 표제작은 철책으로 가로막힌 휴전선과 그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을 대비시켜 한반도의 “바보들”을 풍자한 작품이다.
“그러면서 비웃겠지 놀리겠지/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국토에 수십 년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는 바보들/ 얼마나 아픈지/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 보라지/ 이러면서 새떼들은 세계만방에 소문 내겠지/ 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고”(‘파주에게’ 부분)
1986년 등단해 이듬해 첫 시집 <대학일기>를 냈으며 25년째 금융노조 상근 정책실장으로 일하며 시를 쓰는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 쓰는 일이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제4회 신석정문학상과 신석정촛불문학상 시상식은 23일 오후 3시 전북 부안 신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공광규 시인에게는 상금 3천만원이, 심옥남 시인에게는 500만원이 주어진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