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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광수 전 교수 죽음에...‘중고매물’로 등장한 금서 ‘즐거운 사라’

등록 2017-09-06 15:16수정 2017-09-06 17:21

‘판매금지’ 처분 탓에 중고책 2만∼5만원에 나오기도
다시 출간되려면 ‘유죄’ 판결 번복돼야 가능
고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왼쪽)과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
고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왼쪽)과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
혹자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윤리와 도덕을 파괴했다”고 했다. 고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의 삶을 뒤바꾼 소설 <즐거운 사라>를 두고서다. 1991년 세상에 나온 ‘사라’는 ‘천재’로 불렸던 마 전 교수를 ‘음란물 제조자’이자 ‘전과자’로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1992년 ‘음란물 제조 및 반포’ 혐의로 강의 도중 검찰에 긴급 체포됐고 감옥살이를 했다. 책은 대법원으로부터 ‘판매금지’ 처분을 당했고 서점에서 사라졌다. 마 전 교수는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말하곤 했다.

5일 마 전 교수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금서’인 <즐거운 사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책의 정가는 5800원이지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보니 적게는 2만원에서 5만원의 중고매물로 등장했다. 6일 현재 일부 온라인 중고서점에는 <즐거운 사라>가 판매도서로 등록돼있으며 누리꾼들은 ‘즐거운 사라 원문’, ‘즐거운 사라 전문’ 등을 검색하기도 한다. 국립중앙도서관 누리집을 통해 해당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을 찾아보는 경우도 있다. 1991년 발간된 책 <즐거운 사라>는 대학생 ‘사라’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담은 소설로 교수와 제자의 성관계, 동성연애, 자위행위, 처음 보는 남자와의 즉흥적인 성관계 등을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해 외설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위원회는 문제의 소설이 사회의 건전한 도덕성을 파괴하고 미풍양속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가치판단의 능력뿐만 아니라 건전한 비판력 등 확고한 자아 정체성을 채 갖추지 못한 청소년층에게 성적 충동의 자극을 일으켜 성범죄 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 ‘제재’ 결정을 내렸다.” -199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1992년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구속되는 고 마광수 전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1992년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구속되는 고 마광수 전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1992년 10월 검찰은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간주해, 당시 학교에서 강의 중이던 마광수 교수를 현장에서 체포했고, 구속 기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사회의 건전한 도덕성을 파괴하고 성질서를 문란케한다”며 마 전 교수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내렸다. 뒤이어 대법원은 1995년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제자들이 책 ‘마광수는 옳다’를 발간하며 항의했지만 학교에서도 면직됐다. 1998년 사면을 받아 복직했고 이후 ‘연구실적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하는 등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우울증을 앓다가 지난해 8월 정년퇴직했다. 해직 경력으로 명예교수 직함도 얻지 못했다.

그는 <즐거운 사라>사건으로 학교에서 잘리고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왕따’가 됐다고 회고했다. 마 전 교수는 지난해 정년퇴임을 하면서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다“며 “줄곧 국문과의 왕따 교수로 지냈다”고 밝혔다.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잘리고, 한참 후 겨우 복직했더니 곧바로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으로 우울증을 얻어 휴직한 것, 그 뒤 줄곧 국문과의 왕따 교수로 지낸 것, 그리고 문단에서도 왕따고, 책도 안 읽어보고 무조건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 문단의 처절한 국외자, 단지 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 만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간첩 같은 꼬리표. 그동안 내 육체는 울화병에 허물어져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마광수 전 교수

고 마광수 전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고 마광수 전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즐거운 사라> 사건은 표현의 자유, ‘예술이냐 외설이냐’에 대한 논쟁, 창작물에 대한 법적인 제재 가능 여부 등을 공론장에 꺼낸 사건이기도 하다. 음란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기 때문이다. 2006년에는 마 전 교수가 자신의 누리집에 <즐거운 사라> 본문과 성기 사진 등을 올렸다가 음란물 시비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그래도 ‘사라’는 이어졌다. 마 전 교수는 2011년엔 자신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돌아온 사라>를 냈다. 당시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높으신 분들, 하느님 찾는 분들, 엘리트님들이 낮에는 근엄한 목소리로 마광수 죽여라 해놓고 밤에는 룸살롱에 간다”며 사회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또 자신이 “의도된 경박함”으로 글을 쓴다며 “문학적·문화적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검열의 완전 철폐, 표현의 자유의 완전한 보장에 기여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쾌락설로 한국 문화를 잠에서 깨운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도 했다. (관련기사▶“감옥에 갇혀있던 사라 다시 왔다, 또 가둘래?”)

만약 <즐거운 사라>가 다시 출간되려면 마 전 교수에 대한 유죄 판결이 재심을 통해 번복돼야 한다. 판사 출신 도진기 작가는 “2008년 대법원에서 ‘문학성이 깃들어 있으면 음란물이 아니다’라며 음란물 판정 기준을 완화했다. 만약 <즐거운 사라> 원본이 재출간된다고 해도 이제는 음란물 판정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초판이 중고로 거래된다고 해도 처벌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마 전 교수의 소식이 전해지자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법당국이 마광수 교수를 구속한 것은 과도하고 미개한 법집행이었다. 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게다가 당국의 이 처사는 문단에서 그의 일련의 글들을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해버렸다. 마 교수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전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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