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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연인이 기록한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나날들

등록 2017-09-07 18:56수정 2017-09-07 19:11

인섬니악 시티-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
빌 헤이스 지음/알마·1만7500원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1933~2015)의 연인 빌 헤이스가 그들의 만남부터 사랑, 죽음을 섬세한 감각과 언어로 기록했다. 사랑에 빠진 76살 색스의 다정하고 소년 같은 모습들이 가득 담겼다. 그가 82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6년간 그의 파트너였던 지은이는 그와 함께 한 내밀한 순간들과 뉴욕 생활의 일상들을 솔직담백하게 적고 있다.

“일기는 꼭 적어야 해요!” 16년간을 함께 한 파트너를 심장마비로 잃고 뉴욕으로 이주한 헤이스에게 색스가 한 조언. 그렇게 일기장에, 냅킨에, 영수증에 혹은 카메라 필름에 기록한 뉴욕과 색스에 대한 편린들은 연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고스란히 삶과 상실의 기록이 됐다. 그들의 대화를 옮긴 헤이스의 일기는 그대로 ‘색스 어록’이 된다. “걸어 다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이란 별명처럼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연인을 향한 애정과 통찰을 담은 찬사가 된다. “당신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갑자기 깨달았어. 욕구를 일으키고는 그것을 채워주는 사람, 허기지게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달래주는 사람. 예수 같고 키르케고르 같고 훈제연어 같은 사람…”

연인에게는 ‘불면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랜 불면증에 시달린 헤이스는 불면증의 과학과 역사에 관한 책<불면증과의 동침>을 썼다. 색스 또한 평생 불면증을 겪었다. 헤이스에게 ‘밤’은 상실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하필 수면유도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졌던 밤, 옆자리의 연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 그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불면의 도시’ 뉴욕으로 떠나오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 도시는 생기에 넘친다. 나는 친절함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보상이 돌아온다는 것, 외롭거나 뼛속까지 피곤하거나 우울할 때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뉴욕이-말하자면 뉴욕 사람들이-다 해결해준다는 것을.” 특히 그는 뉴요커들의 사진을 찍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노숙인, 공원의 연인, 지하철 승객, 택시 기사, 불법체류 노동자 등 대부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다. 생생한 표정이 담긴 그들의 사진과 일상은 헤이스의 따뜻한 시선과 담담한 어조와 만나 매혹적인 도시, 뉴욕의 얼굴로 거듭난다.

책은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암 선고를 받은 뒤 6개월여 동안 올리버 색스는 ‘연명 자체를 위한 연명’을 거부하며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글쓰기에 집중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게이 남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생을 ‘완결’할 시간”을 갖는다. 여행과 친구, 친지들과의 만남, 수영과 피아노 연주도 멈추지 않는다. 헤이스의 말마따나 “총명하고 다정하고 겸손하고 잘생겼고 느닷없이 소년 같은 뜨거운 열정을 폭발하는 올리버 색스”는 죽음을 앞두고도,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8개의 ‘희망의 목록’을 작성한다. 목록에는 ‘허락된 쾌락-마리화나 이제 합법’이란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추억에 자주 등장하는 ‘와인 병나발’과 ‘맨해튼 야경 보며 대마 피우기’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면서도 한없이 찡하다. 올리버 색스가 헤이스에게만 보여줬을 친밀한 모습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훔쳐볼 수 있는 것은 소중한 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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