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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침팬지 마음에 상처를 준 동물실험

등록 2017-09-21 19:22수정 2017-09-23 21:46

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스티븐 투켈 밀스 지음, 허진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지난달 초, 말하는 오랑우탄 ‘찬텍’이 숨졌다는 소식을 전 세계 언론이 전했다. 그의 죽음이 슬펐던 건 자신을 사람이라 생각했던 오랑우탄이 ‘사람 가족’과 격리돼 동물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미국 심리학계에서는 유인원에 수화를 가르치는 열풍이 휘몰아쳤다. 언어의 발생과 학습에 대한 기원을 쫓기 위해서였다.

가장 유명했던 동물이 침팬지 ‘워쇼’다. 그는 말하는 유인원 대열의 선두주자였다. 이 책은 워쇼에게 수화를 가르치며 평생을 함께한 로저 파우츠 박사와 워쇼, 타투, 모자 등 ‘말하는 침팬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리학자 앨런과 비어트릭스 가드너 부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가 의사소통 능력을 타고난다고 봤다. 당시는 미국 공군이 ‘우주 침팬지’ 양성을 위해 야생에서 새끼 침팬지 수백 마리를 잡아와 원심분리기에 태워 훈련하던 때였다. 1966년 가드너 부부는 여기서 6개월 된 워쇼를 데리고 온다. 자택 뒤뜰 트레일러에 집을 만들어주고 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채우고 잡지와 콜라를 주며 사람처럼 길렀다. 이른바 ‘종간 교차 양육’이었다.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파우츠는 이듬해부터 수화를 가르친다.

“이 사진에서 스물두 살인 모자는 1979년에 워쇼의 가족이 되었다. 모자는 재현적 그림을 그린 최초의 침팬지였고, 항상 옷을 차려 입기 좋아했다.” 열린책들 제공
“이 사진에서 스물두 살인 모자는 1979년에 워쇼의 가족이 되었다. 모자는 재현적 그림을 그린 최초의 침팬지였고, 항상 옷을 차려 입기 좋아했다.” 열린책들 제공
“제인 구달은 여러 해에 걸쳐서 워쇼의 가족을 여러 번 방문했고, 엘런스버그에 침팬지 인간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지을 때 주 기금을 따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은 1983년에 타투와 나를 방문한 제인 구달.” 열린책들 제공
“제인 구달은 여러 해에 걸쳐서 워쇼의 가족을 여러 번 방문했고, 엘런스버그에 침팬지 인간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지을 때 주 기금을 따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은 1983년에 타투와 나를 방문한 제인 구달.” 열린책들 제공

그때만 해도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이를 비웃듯 워쇼는 빠른 속도로 수화를 익혔다. 언어학자들이 당혹스러워하면서 언어를 재정의할 정도였다(이를테면, 상징만으로 안 되고 통사론이나 문법이 있어야 언어다). 워쇼는 기초적인 추상화, 범주화 능력도 보였다. 뒤뜰의 수양버들뿐만 아니라 ‘나무’로 된 것을 다 ‘나무’라고 했고, 냉장고를 ‘열어서 먹고 마셔’라고 불렀고, 작은 복제품은 ‘아가’라고 말했다. 동료 침팬지와 양아들 ‘룰리스’에게도 수화를 전파했다. 나중엔 침팬지들끼리 수화로 소통했다.

그러나 종간 교차 양육은 예정된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였다. 덩치가 커진 유인원은 사람에게 위협적이었다. 오랑우탄 찬텍의 경우, 대학 도서관에서 한 여학생을 공격한 사건에 연루되면서, 영장류 사육시설을 거쳐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워쇼는 운이 좋았다. 파우츠가 침팬지를 실험용으로 쓰려는 제약회사와 대학의 관료주의를 헤쳐나가며, 동물복지적으로 개선된 보호연구시설을 지어 워쇼와 평생을 함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수화로 ‘과일’이라고 말하는 워쇼. 열린책들 제공
수화로 ‘과일’이라고 말하는 워쇼. 열린책들 제공

워쇼가 과일로 손을 뻗자 내가 ‘과일’이라고 대답한다. 열린책들 제공
워쇼가 과일로 손을 뻗자 내가 ‘과일’이라고 대답한다. 열린책들 제공

내가 워쇼에게 ‘아기 어디 있어?’라고 묻자 워쇼가 자기 배를 가리키고 있다. 열린책들 제공
내가 워쇼에게 ‘아기 어디 있어?’라고 묻자 워쇼가 자기 배를 가리키고 있다. 열린책들 제공

집에 갈 준비가 된 워쇼가 수화로 ‘가자’라고 말하고 있다. 열린책들 제공
집에 갈 준비가 된 워쇼가 수화로 ‘가자’라고 말하고 있다. 열린책들 제공

왜 고향인 야생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느냐고? 인간 문화의 세례를 받은 동물은 야생에 적응할 수 없다. 침팬지를 처음 본 워쇼는 ‘검은 벌레’라고 불렀다. 찬텍은 다른 오랑우탄을 ‘오렌지색 개’라고 불렀다. 인간화된 유인원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엄마 아빠로 알던 가족에게 배신을 당했다. 교차 양육은 동물의 마음에 상처를 준 잔인한 동물실험이었다.

1997년 출판되어 동물 분야 대중서의 고전이 됐지만, 국내에서는 뒤늦게 번역됐다. ‘반인반수’를 길러낸 과학자의 고뇌,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묻는 철학적 질문, 진화과학의 쟁점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교차 양육은 이제 학계에서 철 지난 연구로 취급된다. 윤리적으로 논쟁적일뿐더러 동물의 생태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수화 연구는 이런 유인원 20마리 이상을 탄생시켰다. 워쇼는 2007년 저세상으로 갔다. 그가 간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까, 침팬지가 사는 곳이었을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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