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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생명의 본질, 과연 분자로만 규명할 수 있을까

등록 2017-09-21 19:24수정 2017-09-21 19:46

과학기술학자 김동광 박사
근대 이래 과학과 사회의 역사 살펴
지배적 패러다임인 ‘분자적 생명관’
극복 위해 과학의 신정치경제학 제안

생명의 사회사
-분자적 생명관의 수립에서 생명의 정치경제학까지
김동광 지음/궁리·2만3000원

“생명을 보는 창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과학기술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김동광 박사(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원, 전 한국과학기술학회장)의 새 책 <생명의 사회사>에서, 지은이가 전하려는 가장 힘있는 문장을 꼽자면 아마도 책 읽기를 마치기 직전에 보게 될 이 말일 듯하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이에 앞서 350쪽 가까이 채운 내용은 이 문장의 무게를 더해준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려는 설명과 관점은 다양하지만, 사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지식과 정보에서 생명의 모습은 디엔에이(DNA), 유전자, 단백질 같은 분자들의 생체 기능과 작용으로 이야기된다. 디엔에이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1953년), 디엔에이 재조합 기술의 등장(197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1990~2003년) 같은 성과들은 이런 생명관에 영향을 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지은이는 지금의 지배적이며 특권적인 생명관을 ‘분자적 생명관’이라 정의하면서, 분자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생명의 사회사’라는 제목과 ‘분자적 생명관의 수립에서 생명의 정치경제학까지’라는 부제는 책의 구성과 성격을 요약해준다. 책은 분자적 생명관이 등장하고 ‘지식 권력’과 같은 지위를 얻기까지 거쳐온 과학 연구와 논쟁의 역사, 그리고 당대 과학 활동이 놓여 있던 정치경제와 사회의 맥락을 다룬다. 그러면서 생명의 모습을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물감이 되는 분자생물학, 즉 세포 내 분자의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규명하는 생물학과 그 생명관이 “유일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1953년 <네이처>에 낸 한 쪽짜리 논문을 통해 디엔에이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을 알린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디엔에이 모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 발견은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궁리 제공
1953년 <네이처>에 낸 한 쪽짜리 논문을 통해 디엔에이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을 알린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디엔에이 모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 발견은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궁리 제공

분자생물학이 등장한 1930~50년대의 시기는 책에서 특히 자세히 조명됐다. 대공황 이후에 사회과학, 심리학, 생물학의 도움을 얻어 더 나은 인간과 사회를 만들려는 사회 통제의 열망은 높아졌다. 미국 록펠러재단은 이런 역사에서 주역 중 하나였다. 록펠러재단은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고 사회를 개량하려는 지향을 지니고서 생물학 연구 지원을 적극 추진했으며, 그 덕분에 재단은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생물학’의 탄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지은이는 근대 이래 생물을 흉내낸 자동기계가 관심사가 되고 골상학과 우생학이 한때 번성하고 아이큐(IQ)가 유행했듯이, 더 나은 인간과 사회의 열망이 이어져 왔으며, 이런 역사가 분자생물학의 태동과 융성에도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 통제의 열망과 환원주의적 유전자 결정론의 생명관은 사회생물학이라는 논쟁적인 분야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지은이는 사회생물학을 강하게 비판하는데, 에드워드 윌슨이 제시한 사회생물학의 생명관과 이에 맞선 르원틴, 굴드 같은 과학자 그룹의 논쟁에서 이런 비판을 자세히 읽을 수 있다.

책의 서술에서 중요한 한 축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과학의 정치경제학이다. 과학지식, 기술, 인공물은 이제 제도, 연결망, 권력이라는 구조 안에서 파악될 수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것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왜 어떤 과학 연구는 수행되지 않는지의 문제도 드러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수행돼 우리 눈앞에 있는 과학 연구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행되지 않은 과학 연구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생명의 모습을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물감이 되는 분자생물학, 즉 세포 내 분자의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규명하는 생물학의 패러다임은 생명을 설명하는 유일한 생명관일까? 사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늘날 생명의 모습을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물감이 되는 분자생물학, 즉 세포 내 분자의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규명하는 생물학의 패러다임은 생명을 설명하는 유일한 생명관일까? 사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수행되지 않은 과학’(언던 사이언스)은 사실 ‘분자적 패러다임이 유일한 생명관인가’라는 물음에도 닿아 있다. 개체, 군집, 생태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생명 현상도 생명을 이해하는 데 역시 중요한데, 왜 많은 연구는 환원주의적 분자 연구에 쏠려 있을까? 유전자변형 작물(GMO)의 안전성 연구는 왜 이토록 적게 이뤄지고 있는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문제인데도 연구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왜 그런 연구는 수행되지 못하는 걸까?

당연히 분자생물학이 그동안 개척한 과학 지식의 지평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지은이는 거대 자본 기업이 과학 연구를 외주화하고 과학의 상업화는 늘어나며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과학의 전지구적 사유화 체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을 견지하면서, 이런 체제 안에 든 분자생물학, 분자적 생명관의 경향성을 비판하고 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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