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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학을 노래하는 시인의 ‘동물판 쉰들러 리스트’

등록 2017-09-28 19:43수정 2017-09-28 21:06

2차대전 때 동물과 유대인 300명 구한
폴란드 동물원 사육사 부부 실화
‘야만의 시대’ 동물과 인간의 공존기
주키퍼스 와이프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나무옆의자·1만5000원

‘과학을 노래하는 시인’ 다이앤 애커먼을 처음 읽었을 때, 지금 막 태어나는 인간처럼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총, 균, 쇠>의 작가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미국 시인이자 박물학자인 애커먼을 두고 “뛰어난 묘사, 끝없이 샘솟는 통찰, 불굴의 낙천성으로 국보 반열에 오른 일급 저자”라 했다. 이 평가는 조금도 아까운 데가 없다.

그는 개인 정신활동의 정수인 인문학과 집단 공동연구의 종합인 과학 지식을 겸비했다. 설명 대신 이야기하는 문체로 어떤 무거운 주제든 가볍게 이끌어가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 “우리는 어휘를 사용해 문제들을 해결한다. ‘문제’라는 어휘를 제공하는 언어가 필연적으로 ‘해결’이라는 어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두 단어는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세계에 맞서는 동물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사랑의 백 가지 이름>)고 일관하는 그의 관점은 특히 아낄 만하다.

상처 입은 새를 치료하는 안토니나-얀 부부. 나무옆의자 제공
상처 입은 새를 치료하는 안토니나-얀 부부. 나무옆의자 제공
1930년대 폴란드 바르샤바동물원 풍경. 나무옆의자 제공
1930년대 폴란드 바르샤바동물원 풍경. 나무옆의자 제공

<주키퍼스 와이프>(The Zookeeper’s Wife: A War Story, 2007)는 2차대전 시기 독일군으로부터 동물들과 300명 넘는 유대인을 구한 폴란드인 부부의 실화가 소재인 논픽션. ‘동물판 쉰들러 리스트’로 다음달 국내 개봉하는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감독 니키 카로, 주연 제시카 채스테인)의 원작이기도 하다.

동물 사육사인 얀 자빈스키와 그의 아내 안토니나. 이들은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야생과 같은 환경으로 조성된 바르샤바동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과 교감에 능한 안토니나는 “사람이 동물과 보다 긴밀히 연결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동물도 인간과 친구가 되길 바란다고,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갈망한다고 확신”한다. 1939년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동물도 사람처럼 다치거나 죽는다. 맹수는 먼저 사살된다. 9월27일 폴란드가 독일에 항복한다. 바르샤바의 모든 유대인이 게토로 강제 이주되고, 독일은 게토를 벗어나는 유대인뿐 아니라 유대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이도 처형할 것을 선포한다. 나치를 ‘문제’로 판단한 부부는 동물원을 은신처 삼아 유대인을 살리는 일로 나치에 맞서기로 한다. 동물원에서 돼지를 길러 독일군에 제공할 고기를 생산하기로 하고선 돼지에게 줄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하러 게토를 오가며 “손님”을 빼낸다.

바르샤바동물원에서 오소리를 안고 있는 아이. 나무옆의자 제공
바르샤바동물원에서 오소리를 안고 있는 아이. 나무옆의자 제공
2차대전 시기 ‘노아의 방주’ 구실을 한 얀-안토니나 부부 빌라의 현재 모습. 나무옆의자 제공
2차대전 시기 ‘노아의 방주’ 구실을 한 얀-안토니나 부부 빌라의 현재 모습. 나무옆의자 제공

“생명체를 감추는 적절한 위장전술을 고안해내는 데 동물원 사육사보다 능한 자가 있겠는가? 야생에서 동물들은 주변 환경에 교묘하게 섞여드는 위장술을 갖고 태어난다. 펭귄은 위는 까맣고 아래는 흰색인데,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나는 도둑갈매기들은 그들을 뒤엉킨 바다라 생각하고 무시한다. (…) 사람을 감추는 가장 좋은 위장전술은 더욱 많은 사람과 섞이게 하는 것이다. 부부는 계속해서 합법적인 방문자들을 초대했다.” 닭, 토끼, 개, 고양이, 햄스터, 여우, 오소리, 새, 말, 소, 코끼리, 곰 등 “용케 살아남은” 동물과 300여명의 유대인. 사람과 동물의 이름 사이 구분이 사라지고 “햄스터네”라고 하면 통하는 곳, 1945년 1월 독일군이 철수할 때까지 폴란드판 “노아의 방주”였던 동물원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근거자료는 주석 95개와 참고문헌 62개에 충실히 담겼다.

다이앤 애커먼의 <주키퍼스 와이프>는 다음달 국내에 개봉하는 니키 카로 감독, 제시카 채스테인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사 빅 제공
다이앤 애커먼의 <주키퍼스 와이프>는 다음달 국내에 개봉하는 니키 카로 감독, 제시카 채스테인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사 빅 제공
다이앤 애커먼의 <주키퍼스 와이프>는 다음날 국내에 개봉하는 니키 카로 감독, 주연 제시카 채스테인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사 빅 제공
다이앤 애커먼의 <주키퍼스 와이프>는 다음날 국내에 개봉하는 니키 카로 감독, 주연 제시카 채스테인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사 빅 제공

애커먼은 오감과 공감각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저장한 <감각의 박물학>, 정신과 언어를 지배하는 뇌 메커니즘을 풀어쓴 <뇌의 문화지도>, 뇌졸중으로 언어를 잃은 소설가 남편과 자신의 치유 과정을 기록한 <사랑의 백 가지 이름>, 어떻게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살핀 <휴먼 에이지> 등을 통해 과학과 시를 결합해왔다. 자연을 매개로 인간성을 탐구하면서 따뜻하기만 한 태도는 <주키퍼스 와이프>에서도 변함없다. 그는 안토니나를 통해 “비로소 희망을 느끼는”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았으며, 편안히 머물 공간이 있고, 자신의 심장이 아직 따뜻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온다는 것과 “밤이면 누워 잠에 곯아떨어져도 좋다는 믿음처럼, 잠재의식 속에서 사람을 안심시키는 것들”로 이뤄진 “일상의 신비주의”를 배운다. 이렇게 쉬운 말로 쓰인 비범한 문장의 맛. 애커먼은 진부한 표현에 폐소공포가 있는 독자를 어김없이 구한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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