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과 홍희담의 딸 황여정(43)씨가 소설가가 되어 부모의 업을 잇게 됐다.
황여정씨는 24일 발표된 5천만원 고료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에 경장편 <알제리의 유령들>이 당선해 등단했다. 장편을 대상으로 한 문학동네소설상과 경장편 대상 문학동네작가상을 통합해 시행한 23회 문학동네소설상에는 모두 408명이 428편을 응모했다고 문학동네는 밝혔다.
황여정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놀랍고 얼떨떨하다”며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약속이나 한 듯 ‘이제 원이 없다’며 기뻐하셨다”고 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중학교 때는 교지에 작품을 싣기도 했어요. 정식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대학 졸업 무렵인 스물네다섯살 때였어요. 그 뒤로 장편과 중단편 공모에 열번 넘게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었죠. 좌절해서 2~3년쯤 작파했다가 다시 시작하곤 한게 몇번인지 몰라요. 출판사로부터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 전화 드렸더니 당장 아버지 사시는 일산으로 와서 술 한잔 하자 하셨고, 만나서는 계속 잘했다며 ‘엄지척’을 하시더군요. 엄마는 아버지보다 더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셨어요.”
아버지 황석영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여정씨의 어머니 홍희담 역시 80년 광주 5·18을 민중의 처지에서 그린 문제적 중편 ‘깃발’ 등을 쓴 작가이자, 1970, 80년대 광주 지역의 여성·사회 운동을 이끈 이다.
황여정씨는 “아버지가 원래 충고 같은 걸 잘 안 하시는데, 이번에 만나서는 좋은 작가가 되라고 하시더라”며 “좋은 작가란 어떤 작가인지 여쭈었더니 그저 일상 언어로 열심히, 계속 쓰라고, 지치지 말고 쓰라고만 하셨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한승원 선배와 한강 같은 부녀 소설가를 보며 내심 부러웠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내 딸도 소설가가 되었으니 정말 기쁘다”며 “아무개의 딸이라는 게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힘든 짐이었을 것 같아서 늘 미안하게 생각해 왔다. 이제는 분발해서 더 열심히 썼으면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딸에게 말한 ‘좋은 작가’가 어떤 것인지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분단과 불완전한 민주주의 등 한국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작가란 동시대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책임도 질 줄 아는 존재여야 해요. 너무 개인주의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려깊게 주위를 둘러보며 글을 쓰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 해야겠죠.”
문학동네소설상 제1회(<새의 선물>) 수상자로 이번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은희경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오랫동안 문장을 수련한 내공이 보여서 기성 작가의 작품이 아닐까 싶었는데 신인이어서 깜짝 놀랐다”며 “가벼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거운 주제를 세련되게 잘 담았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이 견해를 같이했다”고 전했다. 역시 심사를 맡았던 또 다른 소설가는 “당연히 이름을 가린 상태에서 심사를 했고 결과가 정해진 뒤에 보니 그나마 응모자의 이름도 본명이 아니었다. 전화 통화로 황여정씨인 것을 확인하고는 심사위원들이 모두 놀라며 다들 잘됐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선작 <알제리의 유령들>은 개인과 역사가 허구적 상상력 안에서 흥미롭게 구현된 재주가 돋보였고, 위트와 리듬감을 갖춘 문장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이번 심사에는 소설가 강영숙 윤성희 윤이형 은희경 정용준, 문학평론가 류보선 백지은 신형철 황종연이 참여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황여정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