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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폭력’이라는 프리즘으로 조망한 이혼과 동물 이야기

등록 2017-10-26 19:42수정 2017-10-26 20:22

김숨 소설집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성실성과 꾸준함, 문제의식 돋보여
“위안부 다룬 연작소설집 낼 계획”
 
 
당신의 신/김숨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김숨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김숨을 꾸준함과 성실함의 대명사라 하자. 1974년생으로 1997년에 등단한 그는 20년 동안 장편 아홉과 중단편집 넷을 상재했다. 그리고 이번에 소설집 두권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한꺼번에 내놓았다. 여기에다가 책으로 묶이지 않은 단편이 여덟이고, 최근에 장편 연재 마지막 원고를 마감했다니 김숨의 소설 생산성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하긴 여느 작가와 달리 산문집을 한권도 내지 않은 데에서도 소설 쓰기에 임하는 그의 비상한 각오와 염결적인 태도를 짐작할 수 있음이다.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등 신작 소설집 두권을 한꺼번에 낸 김숨. “내 또래 여성들의 결혼과 이혼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서 구상했지만, 나 자신의 삶 역시 그에 겹쳐서 나온 작품이 표제작 ‘이혼’”이라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등 신작 소설집 두권을 한꺼번에 낸 김숨. “내 또래 여성들의 결혼과 이혼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서 구상했지만, 나 자신의 삶 역시 그에 겹쳐서 나온 작품이 표제작 ‘이혼’”이라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당신의 신>에는 표제작 격으로 비교적 분량이 긴 ‘이혼’을 포함해 단편 셋이 묶였고, <나는 염소가…>에는 여섯 단편이 실렸다. 약간 무리를 한다면 두툼한 한권으로 편집할 수도 있었을 것을 두권으로 나눈 까닭은 양쪽 작품들이 소재와 주제 측면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신>이 이혼을 소재로 삼았다면, <나는 염소가…>에는 동물을 테마로 삼은 것들이 모였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남편 철식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가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라는 말을 들었던 주인공 민정은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철식은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라는 말까지 덧붙이지 않았겠는가. 민정이 이혼을 결심하기까지는, 남편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순간에 철식이 제 일을 하느라 곁에 없었다는 사정이 결정적이었다. 아이를 유산했을 때에도,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전세 기간이 다 되어 이사 갈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동안에도 철식은 민정을 챙기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기록하는 데에 열심인 철식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의 고통에는 어떻게 그렇게 무감각할 수 있는지” 하는 의문과 회의가 민정으로 하여금 이혼을 택하게 만들었다.

신작 소설집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펴낸 소설가 김숨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신작 소설집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펴낸 소설가 김숨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 소설에는 평생 남편의 야만적 폭력에 시달리면서 아이 셋을 낳고 53년을 함께 산 민정의 어머니, 남편과 이혼하고 싶어도 그것이 2천여 교회 신도들과의 이혼이자 신과의 이혼이기도 해서 결국 하지 못한다는 목사 부인, 이혼 뒤 직장 내 추문에 휩싸여 해고당하고 불안정 노동자로 살아가는 ‘영미 선배’, 그리고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어쩌겠어요? (…)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너그러워져요. 이해 못할 일도, 용서 못할 일도 없고요”라 말하는 난봉꾼 사진작가 최의 아내가 아울러 등장해 이혼을 둘러싼 풍경을 다각도로 그려 보인다.

같은 책에 실린 ‘읍산요금소’와 ‘새의 장례식’은 각각 이혼한 여자와 남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데, 두 작품 모두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이혼을 전후해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양상들이다. 이 점은 표제작에서 민정 어머니가 겪었던 폭력과도 통하는 대목이자, 동물을 테마로 한 소설집 <나는 염소가…>로도 이어지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신작 소설집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펴낸 소설가 김숨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신작 소설집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펴낸 소설가 김숨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집 안에 출현했다는 쥐를 잡고자 출동한 사내들이 조성하는 혼란과 공포를 그린 ‘쥐의 탄생’, 노루를 사냥해 그 피를 먹겠다며 밤차를 모는 남자들을 등장시킨 ‘피의 부름’, 보양식을 만들어 파느라 식칼로 자라 대가리를 자르는 엄마와 그걸 보며 박수를 치는 어린 아들이 나오는 ‘자라’ 등에서 인간과 동물이 얽히며 빚어내는 폭력과 불안은 섬찟한 독후감을 남긴다. 반면 같은 책에 실린 작품 ‘벌’은 유사 근친상간과 자살, 사고로 위장한 살인 등이 등장함에도 그 모든 것을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거대한 시선 같은 것이 폭력의 직접성과 야만성을 자연의 질서로 순치시키는 느낌이다.

지난해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삼은 두 장편 와 <한 명>을 냈고 올해 신설된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을 받은 김숨은 25일 오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두 장편을 내고 뜻깊은 상을 받은 것은 작가로서 나를 성장시킨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단편 연작을 더 써서 따로 책으로 묶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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