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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시장, 탄핵 위기에 빠지다

등록 2017-11-02 19:40수정 2017-11-02 20:12

최은미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핵발전소 위협, 사이비 종교집단 등
굵직한 사회문제 두루 다룬 역작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문학동네·1만3800원

한국 소설이 민감한 사회 현안을 다루는 데 소극적이라는 평이 있다. 80년대 민중문학의 ‘과도한’ 사회 참여에 대한 반작용이라 헤아리기에는 아쉬움이 작지 않다. 독자가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이 섬세한 심리 묘사와 단단한 문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은미의 첫 장편 <아홉번째 파도>는 한국 소설에 대한 그런 아쉬움을 달래 줄 만한 역작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동해안 소도시 척주에 핵발전소를 세우려는 시장과 그런 시장을 탄핵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맞선다. 지역 경제의 축을 이루었던 동진시멘트 사장 출신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시장이 발전소 유치를 밀어붙이던 중 동진시멘트 노동자 출신 진폐증 노인이 독극물 막걸리를 마시고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핵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갈등이 표층에서 서사를 끌어간다면, 동진시멘트와 사이비 종교집단 약왕성도회 등이 연루된 부정과 불법은 심층에서 사건과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작가는 척주 출신 세 남녀를 주인공 삼아 얽히고설킨 척주의 과거사와 현재 상황을 풀어놓는다. 서울 직장을 버리고 고향 척주의 보건소로 옮겨 온 약사 송인화, 서울에서 송인화와 동거하다가 헤어진 뒤 지금은 지역구 의원 보좌관으로 역시 척주에 내려와 있는 윤태진, 그리고 송인화가 있는 보건소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는 약대 휴학생 서상화가 그들. 송인화를 향한 윤태진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인화와 상화가 새롭게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세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삼각관계도 형성된다.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룬 첫 장편 <아홉번째 파도>를 낸 소설가 최은미. “제 인물들을 따뜻한 길목에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한 것이 계속 미안합니다”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문학동네 제공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룬 첫 장편 <아홉번째 파도>를 낸 소설가 최은미. “제 인물들을 따뜻한 길목에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한 것이 계속 미안합니다”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문학동네 제공

세 주인공에게 척주는 고향이 주는 푸근함 이상으로 원형적 상처와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윤태진은 고교 시절 당한 사고로 갑상선 질환을 앓으면서 잘나가던 인생이 꼬였다는 생각에 극도의 허무주의로 빠져든다. 그는 송인화가 무뇌아를 임신했다가 유산하게 되자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 인화와 헤어지기에 이른다. 동진시멘트 간부였던 아버지가 의문사한 뒤 고향을 떠났다가 18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송인화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푸는 일이 핵발전소 건설 갈등으로 표출된 척주의 치부를 들춰내는 작업과 포개진다. 동진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약왕성도회에 빠져 집을 나간 어머니를 둔 서상화 역시, 송인화와 비슷하게, 개인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동시에 사회적 의미도 지니게 된다.

“척주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독극물 막걸리 살인과 핵발전소 건설 찬반 싸움, 20년 가까이 잠잠했던 사이비 종교집단 약왕성도회의 활동 재개 등을 지켜보며 송인화는 이렇게 자문한다. 시장은 주민 96.9퍼센트가 서명했다는 핵발전소 유치 찬성 서명부를 조작해서 제출한다. 척주 시민들이 드나드는 에스엔에스 계정에서는 핵발전소 찬성과 반대로 편을 갈라 상대방의 ‘과거사 폭로전’이 이어진다. 시민 발의로 시장 소환을 위한 주민투표가 결정되자 시장은 공무원과 그 가족들을 동원해 갖은 방법으로 투표를 방해한다. 결국 회유와 협박이 먹혀들어 주민소환투표는 부결되지만 그것은 새로운 갈등과 더 큰 비극의 출발점이 된다.

핵발전소 유치로 경제 효과를 거두고 그를 바탕으로 국회의원직에 도전하려는 시장의 야심과 그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은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작가의 성실한 취재 덕분일 것이다. 송인화 아버지 죽음의 비밀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는, 동진시멘트와 약왕성도회가 연루된 불법 및 음모는 근래 한국 장르 영화들에서 자주 보았던 설정을 떠오르게 한다. “남자들이 펜스로 달려드는 동시에 송인화는 세 번째 틀에 발을 올렸다. 그러고는 안으로 몸을 던졌다” 같은 문장도 ‘영화적 문법’에 충실해 보인다. 척주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삼아 핵발전소의 위험성,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비 종교집단, 마약류 유통 같은 굵직한 문제를 두루 대결 상대로 삼는 작가의 패기가 듬직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문제를 한 작품에 욱여넣은데다, 모든 궁금증이 한꺼번에 해소되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소설 말미의 처리는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작가 최은미는 2008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과 <목련정전>을 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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