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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독재몸살 앓는 터키에게…‘문학의 이름’으로 건넨 위로

등록 2017-11-05 16:18수정 2017-11-05 19:14

‘이스탄불 국제도서전’ 간 한국 작가들
수교 60주년 맞아 주빈국 초청
이성복·최윤 등 6명 언론간담회
출판자유 옥죄는 정치상황에
“우리의 예가 희망될 수 있길”
4일 개막한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한 터키 방문객은 “터키에선 즐길 만한 문화 행사가 많지 않아 도서전이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4일 개막한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한 터키 방문객은 “터키에선 즐길 만한 문화 행사가 많지 않아 도서전이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우리(한국)의 예가 터키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터키 이스탄불 튀야프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이성복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36회를 맞은 이번 도서전에선 한국-터키 수교 60돌을 맞아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됐다. 터키도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초청된 바 있다. 터키 최대의 도서전답게 지난해 60만명(서울국제도서전의 3배)이 방문했고, 올해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터키인들의 평균 독서량은 ‘10년에 한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지만 다양한 문화적 즐길거리가 없기 때문에 도서전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는 게 현지 출판인들의 평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운영하는 주빈국관은 한국의 케이팝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터키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전시장에서 만난 중학생 베리반 드루무시(15)는 “방탄소년단, 엑스오 같은 케이팝 그룹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도 많이 보는데 이번에 전시회에 와서 한국 소설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4일 개막한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 관람객이 몰린 인파.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4일 개막한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 관람객이 몰린 인파.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하지만 저변에선 터키의 정치적 상황을 두고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도서전이 개막한 4일 오전 천양희 시인, 최윤 손홍규 김애란 소설가 등 6명이 한 한국 언론 기자간담회에서 이성복 시인은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한 터키 학생이 한국의 촛불집회를 보고 고국의 상황이 떠올라 많이 힘들다고 하더라. 터키인들에게도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화병 같은 게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미약할 때 그 화병이 얼마나 심할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안도현 작가는 “터키의 현재 정부가 지난 박근혜 정부와 비슷하다. 여기서 젊은 터키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말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질문하는 식으로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초청받은 한국 작가들은 터키어로 번역된 작품이 있거나 번역 중인 작가들로, 현재 터키에선 15종의 한국 작품이 번역돼 있다.

현재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14년째 총리에 이어 대통령을 하고 있고, 지난 4월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이른바 ‘술탄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가결(51.4%)을 끌어내 장기집권의 길을 연 점에서 유신 개헌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상황은 도서전에서도 감지되는데, 도서전에 나온 한 터키의 좌파 출판사 편집자는 인터뷰를 고사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 대통령 모욕죄로 2년 징역을 살아야 한다. 수백명이 이미 이 죄목으로 징역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 참여한 김애란(왼쪽부터) 손홍규 소설가, 안도현 천양희 이성복 시인이 4일 한국 취재진과 만나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김지훈 기자
이스탄불국제도서전에 참여한 김애란(왼쪽부터) 손홍규 소설가, 안도현 천양희 이성복 시인이 4일 한국 취재진과 만나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김지훈 기자

터키 정부는 지난해 11월 사회주의 정당이자 쿠르드족을 대변하는 인민민주당(HDP)이 쿠르드족 무장단체와 연계돼 있다며 셀라하틴 데미르타시(44) 당대표 등 지도부 10명을 구속한 상태다. 도서전에선 그가 쓴 <여명>(Seher)이라는 책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었다. 책을 출판한 디프노트(dipnot) 출판사 관계자는 “이 책은 정치적 내용은 없이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판매가 가능했다. 현재 20만부가 팔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도현의 <연어>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터키어로 번역한 괵셀 튀르쾨쥐(45) 터키 에르지예스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현재 터키에선 언론의 자유가 많이 억압되고 있기는 하지만, 해외에선 너무 그걸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 억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 터키 지식인 사회의 미묘한 온도차를 보여줬다.

한편, 세속주의 정치 체제를 채택해 이슬람 국가 중에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인 터키에선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터키를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무크의 작품 등 42권을 우리말로 옮긴 이난아 번역가는 “터키의 출판사에서 한국의 여성문제가 어떤지, 한국 여성작가들이 여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하다면서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터키의 독자층 대부분이 여성이고, 여성의 인권을 개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잘 팔린다. 하지만 종교적 이유로 여성들이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이 한국문학을 터키에 알릴 적기”라며 5명밖에 되지 않는 터키어 번역가 양성을 더욱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탄불/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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