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민음사·1만6800원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에 주어지지 않고 한 작가의 평생에 걸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시상한다. 수상자들은 60대는 물론 70대 이상 고령인 경우가 많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새삼 ‘최고의’ 작품을 쓰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을 받은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파무크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2006년, 그의 나이 54살일 때였고 새로 번역돼 나온 그의 소설 <내 마음의 낯섦>은 그 7년 뒤인 2013년에 출간한 작품이다.
1968년 9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40여년을 배경 삼은 이 소설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고 자족할 줄 아는 주인공 메블루트의 선한 사람됨이다. 소설 말미의 지문이 알려주는 대로 “그는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항상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성인(聖人)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정직하고 열린 마음을 갖도록 창조된 존재들”이라는 낙관주의와 순수성을 그가 평생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메블루트는 많이 배우지 못했고 큰돈을 벌지도 못했으며 이렇다 할 명예를 얻지도 못했지만, 그는 인간과 세계의 선의를 믿고 스스로 선하게 살고자 노력한 ‘영웅’이었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 밤거리에서 알코올성 음료 보자를 파는 행상을 주인공 삼은 소설 <내 마음의 낯섦>의 작가 오르한 파무크. 사진은 그가 2008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소설은 스물다섯살 메블루트가 동갑내기 사촌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쉴레이만 형수의 동생인 라이하와 밤도망을 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촌형의 결혼식장에서 “신비스러운 눈길”과 “사로잡는 시선”을 지닌 소녀에게 첫눈에 반한 메블루트는 ‘라이하’라는 이름을 지닌 그 소녀에게 3년 동안 얼굴 한번 못 본 채 편지를 썼고, 이제 열일곱살이 된 소녀와 결혼하고자 도망치기로 한 것이다. 메블루트가 소녀의 얼굴을 처음 본 것은 쉴레이만이 모는 트럭 뒤칸에 소녀가 타고 있을 때 한순간 사방을 밝힌 번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평생 동안 그 순간을, 그 낯선 감정을 자주 떠올릴 것이었다.”
소설 제목과도 연결될 이 ‘낯선 감정’이란 무엇이었을까. 머지않아 드러나거니와, 도망치던 트럭에서 확인한 라이하의 얼굴은 그가 결혼식장에서 첫눈에 반했던 그 소녀의 얼굴이 아니었다. 사실 메블루트가 반한 것은 라이하의 한살 아래 동생인 사미하였고, 그 자신 사미하에게 마음이 있었던 쉴레이만 그리고 라이하에게 얼른 짝을 찾아주고자 한 언니 웨디하 등 식구들의 꾀에 메블루트가 넘어갔던 것. 그런데 메블루트의 ‘영웅적’ 면모가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여기서부터다. 남들 같으면 실망과 분노로 이어졌을 상황임에도 메블루트는 현실을 받아들임은 물론, 사미하가 아닌 라이하를 진정을 다해 사랑한다. 라이하는 물론 그가 반했던 소녀가 아니었고, 사미하에 비해 미모가 떨어지는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메블루트는 라이하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며, 또 사실은 편지를 그녀 같은 사람에게, 어쩌면 그녀에게 썼다고까지 점점 믿기 시작했다.”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스탄불의 밤거리에서 약한 알코올성 음료 보자를 파는 행상으로 생계를 꾸린 메블루트는 라마단의 금기를 깨면서 라이하와 몰래 사랑을 나눌 정도로 금슬이 좋지만, 아내가 딸 둘을 남긴 채 서른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쉴레이만이 아닌 메블루트의 좌익 친구와 결혼했던 사미하도 결국 혼자가 된 뒤 두 사람은 마흔을 전후한 나이에 재혼한다. 20여년 전 편지가 뒤늦게 임자를 찾아간 셈인데, 소설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 메블루트의 혼잣말은 뜻밖의 반전으로 독자의 허를 찌른다.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라이하를 사랑했어.”
이 소설에서 메블루트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삶의 역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는 도시 이스탄불의 40여년에 걸친 변화상이다. 같은 시기 서울이 겪은 변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스탄불의 변화와 개발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작가의 진짜 의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묘사는 생생하다. 산동네 무허가 판자촌에서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로 주거지가 바뀐 데에서 보듯 메블루트와 주변 사람들의 삶은 형편이 피었지만, 개발과 발전은 불가피하게 쓰라린 상실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쉰두살 메블루트는 아프게 깨닫는다.
“그의 단칸집이 허물어질 차례가 오자 메블루트는 가슴이 아팠다. 불도저의 일격으로 그의 어린 시절, 그가 먹었던 음식들, 공부했던 순간들, 맡았던 냄새들, 아버지가 코 골며 자던 소리, 수많은 추억들이 모두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사라졌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