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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야기의 힘? 말하고 듣는 사람 공감할 때 폭발하죠”

등록 2017-11-12 17:47수정 2017-11-12 20:35

【짬】 현실비판 우화 쓴 서정오 동화작가

서정오 작가는 최근 펴낸 <우화-세상을 읽는 이야기>에 실린 어떤 글은 “울면서 썼다”고 했다. “옛이야기 밑천이 동이 났어요. 여건이 되면 우화를 계속 써보고 싶어요. 하지만 우화가 필요 없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겠지요.”
서정오 작가는 최근 펴낸 <우화-세상을 읽는 이야기>에 실린 어떤 글은 “울면서 썼다”고 했다. “옛이야기 밑천이 동이 났어요. 여건이 되면 우화를 계속 써보고 싶어요. 하지만 우화가 필요 없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겠지요.”

옛 우화 속 박쥐는 힘세 보이는 쪽에 붙은 기회주의자였다. 들짐승과 날짐승을 왔다 갔다 했다. 평화가 오자 박쥐는 양쪽한테 따돌림을 당했다. 동화작가이자 아동문학가인 서정오(62)씨는 박쥐를 들짐승과 날짐승 강경파의 전쟁놀음에서 체제 선전 도구로 이용당하는 희생양으로 다시 그렸다. 옛이야기가 이 시대의 문제를 꼬집는 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최근 <우화―세상을 읽는 이야기>(보리 펴냄)를 펴낸 서 작가를 지난 4일 전화로 만났다.

책엔 50편의 우화가 실렸다. 부자나 지식인, 권력자 등 기득권자들의 행태를 꼬집거나 문명 세상의 모습에 딴죽을 거는 이야기들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비틀어 쓰기도 했다. 그가 쓴 청개구리 이야기를 보면 청개구리들이 비가 올 때 우는 이유는 저세상으로 간 청개구리에게 어른 말을 잘 들으라고 다그친 것을 후회해서다. 나뭇잎 배를 탄 청개구리는 비가 많이 내리고 물살이 세어졌어도 “가만히 있어”라는 어른들 말을 따랐다. 폭풍우가 멎은 뒤 청개구리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를 부른 어른들의 무지와 탐욕을 에둘러 꼬집었다.

서 작가는 지금도 일년에 100회 정도 어린이와 부모, 선생님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그를 ‘이야기 대장’이라고 부른다. 그가 1996년에 펴낸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현암사)는 지금껏 25만부 남짓 팔렸다. 입말투를 살려 쉽고 재미있게 빚어낸 이야기들에는 그가 직접 마을을 돌며 채록한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

책에 실린 우화들은 2011년부터 4년 동안 잡지 <개똥이네 집>(보리 펴냄)에 연재한 글들이다. “잡지가 어른들 대상이었죠. 어른용 이야기는 새로운 시도였죠. 글 쓸 당시 우리 사회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왔어요. 힘센 사람들 잘못 때문에 약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죠. 글 쓰는 이는 잠수함 속 토끼처럼 사회에 위기가 오면 민감하게 반응해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권력 편에서 왜곡을 서슴지 않는 언론이나 백성의 생각마저 통제하려는 권력의 구태도 꼬집었다. 이런 ‘현실 비판’을 이야기책에서 읽는 게 불편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정한 사람이나 일을 꼬집는 게 아니라 빗대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자기 경험과 생각의 범위 안에서 받아들이겠지요. 어느 정도 큰 아이라면 즐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옛이야기 직접 채록하고
입말투 고쳐 쓴 ‘이야기 대장’
이 시대 지식인 권력자 자본가
에둘러 비판한 우화집 펴내

“스마트폰 익숙한 아이들도
이야기 세번만 들려주면 빠져”

그는 “이야기를 되살리는 일은 사람답게 사는 데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야기는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묶어내는 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의 말을 더 들었다. “지금은 간결한 말이 소통을 지배하죠. 은유나 반추, 여유가 있는 이야기는 소통에 비능률적이죠. 하지만 이야기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공감에 바탕하고 있어요. 공감하는 순간 그 힘은 엄청납니다. 함께 만들고 받아들이고 즐기는 게 바로 이야기입니다.”

고향인 안동에서 자랄 때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어른과 아이, 어른과 어른 모두 이야기로 만났어요. 어렸을 때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삶을 기억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영상 문화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로 소통하는 문화가 힘을 잃었지만 지금도 ‘이야기의 힘’을 느낀다고 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 옛이야기를 잘 듣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을 저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세번만 들려주면 이야기에 쏙 빠져듭니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보지 못했어요. ‘착한 사람이 복받는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잘 받아들여요.”

서정오 작가가 최근 펴낸 <우화> 표지.
서정오 작가가 최근 펴낸 <우화> 표지.

고 이오덕 선생은 서 작가를 두고 “우리말을 아주 깨끗하게 쓰시는 분”이라고 칭찬했다. “글 쓰는 이들이 우리말로 글 쓰고 우리말로 말하는 것은 우리말 사랑의 차원을 넘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기본입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세요. 깨끗한 우리말을 쓰십니다. 외국어 찌꺼기가 없고 우리 말법에 어긋나지 않죠. 알아듣기 힘든 말도 없어요. 지식인이나 권력자의 말은 소통이 아니라 차별과 권위가 목적이죠. (백성과) 같은 말을 쓰면 권위가 안 산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은) 뿌리가 워낙 깊어요.”

지식인과 권력자의 생각이 담긴 ‘글’은 대접을 받지만 백성의 삶과 생각이 담긴 ‘말’은 홀대를 받는다고도 했다. “옛이야기들이 20~30년 뒤에는 다 사라집니다. 급하게 됐어요. 정부 차원에서 수집에 나서야 합니다. 남은 게 아직도 많아요. 1980년대 옛 정신문화연구원에서 구비문학대계를 만들어 방대한 자료를 모았어요. 그때는 표집이었죠.”

그는 우리 옛이야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민중성을 들었다. “우리 이야기를 보면 이름이 없어요. 서양에는 잭, 한스 같은 이름이 나오죠. 왕자 공주 이야기도 없고, 왕 이야기도 드물어요. 철저하게 백성들 이야기죠. 권력자로 원님이 등장하는데, 백성 편을 들 때만 좋은 모습입니다.” 이유를 물었다. “백성이 권력에 의해 어려운 삶을 살았으면서도 권력에 순종하지 않고 세상의 주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좋아하는 옛이야기 하나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저승길도 같이 가라’를 들었다. “못 배운 사람이 저승길을 같이 가는 배운 사람에게 염불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요. 그런데 배운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아요. 배운 사람은 결국 염라대왕에게 많이 혼납니다. ‘함께 살기’는 우리 옛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진리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서정오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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