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삼은 합동 소설집이 나왔다.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등 30, 40대 여성 작가 일곱 사람이 신작 단편 하나씩을 써서 참여한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다. 세 작가 말고도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 작가가 동참했다.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는 장편 <82년생 김지영>으로 최근 문학 안팎의 페미니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조남주 작가가 <82년생 김지영> 이후 1년여 만에 처음 발표한 소설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 만나 10년째 사귀었고 최근 청혼을 한 현남 오빠에게 주인공 여성이 거절 의사를 담아 쓰는 편지 형식을 취했다. 인생의 거의 3분의 1을 함께해 온 남자친구의 청혼을 주인공이 거절하는 까닭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데, 조남주 작가는 13일 낮 서울 서교동 한 북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것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영화 <가스등>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타인의 마음을 조종해서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고 그를 이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연애와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이런 일이 주로 발생한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소설 마지막 대목은 10년 동안 한 남자의 꼭두각시로 살아왔던 여주인공의 독립 선언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기도 전에 ‘개자식아’가 들어가는 마지막 문장부터 떠올렸다고 했다.
“방송 시사교양 프로그램 취재작가로 일하던 스물세살 때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만난 일이 있어요. 중학생 딸을 둔 엄마였는데,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경제력도 갖춘 분이었어요. 그런데 딸과 함께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렸어요. 그때 저는 ‘왜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하는 의문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처럼 자신이 놓인 피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그로부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과 그 뒤의 공부가 이 소설로 이어졌어요.”
그는 “‘페미니즘 전문 작가’로 불리는 데 대해 부담은 없다”며 “앞으로도 계속 같은 주제와 소재만 다루지는 않겠지만, 여성들이 여성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책에 실린 김이설의 단편 ‘경년’(更年)은 또래 여자아이를 성적 대상과 스트레스 해소 도구로만 생각하는 열다섯살 아들, 그리고 이제 막 초경을 한 열두살 딸을 둔 엄마의 시점을 택해,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조차 자유롭지 않은 차별과 여성 혐오의 관습을 비판한 작품이다. 김 작가는 “나 자신 초등학교 3학년과 6학년인 두 딸을 키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아래 세대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붕괴된 건물 촬영기사라는 직업을 지닌 여성을 주인공 삼아,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남성의 목소리로 말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모든 것을 제자리에’의 최정화 작가는 “여성에게 사회가 가하는 압박과 모순도 있겠지만, 여성이 여성인 자신에게 가하는 압박과 모순도 있을 텐데 그런 것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자신에게 문제 제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밝혔다.
합동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에 참여한 작가들의 인세 일부와 출판사 수익금 일부는 여성인권단체에 기부된다.
페미니즘 단편집에 참가한 소설가 조남주(가운데)씨가 13일 낮 서울 서교동 한 북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이설 작가, 오른쪽은 최정화 작가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