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한국 도가철학 1세대’ 송항룡 교수
송항룡(79) 교수가 노자를 만난 게 서울 용산고 1학년 때였으니 60년 이상 세월이 흘렀다. 동대문 헌책방에서 만난 노자의 <도덕경>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 늘 읽어보다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들어가 아예 노장사상을 전공했다. 유림이 세운 이 대학에서 노장은 이단 취급을 받았다. 가르침을 받을 전공 교수가 없어 서양철학 전공자인 고 구본명 교수한테 지도를 받았단다.
“노장으로 학부 졸업 논문을 쓴다니 친구가 그래요. ‘너 그러면 졸업 못 한다’고요.” 다행히 그는 모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고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한국 도가 철학 1세대 학자’로 불리는 송 교수는 최근 소설 <맹랑 선생, 그는 광대였다>(성균관대출판부)를 펴냈다. 그를 지난 7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자택에서 만났다.
이 소설을 쓰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1년만 더 고쳐 쓰면 좋았을 텐데. 죽기 전에 내려고….” 소설은 첫 산문집 <무하유지향의 사람들>(1987)을 포함해 앞선 다섯권의 산문집에 흩어졌던 생각을 한데 모아본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98년 회갑을 맞아선 ‘산촌 일기’를 모아 산문집 <맹랑선생전>을 내기도 했다.
‘먹물을 먹은 후부터 인간은 사실을 떠나 지식의 굴레를 쓰고 광대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창작 의도를 간추린 저자의 글귀다. 맹랑은 <장자>에 나오는 말로 ‘터무니없고 가당치도 않은 말’이란 뜻이다. 만권의 책이 뱃속에 있어 모르는 게 없다고 확신했던 맹랑 선생은 어느 순간 ‘진리’에 대한 글을 쓰다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이른다. ‘진리가 뭔지’를 두고 한 줄도 글을 쓰기 힘들었다. 그동안 허수아비들과 광대놀음을 했다는 탄식과 함께 맹랑은 길을 떠난다. 길에서 장자에 나오는 현주 상망 등부터 공자 맹자 주공까지 여러 인물을 만난다. 이들과의 만남과 떠남 가운데 앎과 진리에 대한 저자의 성찰이 배어든다. ‘철학 소설’이지만 쉽게 읽힌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사설을 풀기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해서일 것이다.
‘맹랑 선생, 그는 광대였다’ 출간
1987년 첫 산문집 이래 5권 정리
“먹물 먹은 뒤부터 지식 굴레 갇혀” ‘노장사상’ 이단 취급 딛고 ‘박사’
79년부터 서울 벗어나 산촌생활
“욕심을 안 부리고 사는 삶” 추구 왜 소설을? “과학문명이 대단한 것 같지만, 불교나 노장사상에서 보면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내 글은 이런 사고에서 나와요. 이 세상 못된 짓 하는 이들은 모두 ‘아는 사람들’입니다. 불교나 노장사상은 ‘아는 것을 버려라’고 하지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배웠지만 나이 들어 보니 (인간이 동물보다) 별로 우월한 것 같지 않아요. (인간은) 나이 들면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못되게 사는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이란 ‘먹물 든 사람들’이다. “책에 의해 머리에 익힌 지식이 먹물이죠. 그 지식은 잊어버리기 힘들어요. 지식에 의해 움직여지면 진실을 외면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문자에 의해 아는 지식에 의존하는 겁니다. 그 문자가 담긴 게 서책이죠. 노장은 문자에서 사실을 찾지 말라고 합니다.” 그는 “문명의 수레바퀴는 멈출 순 없지만, 문자라는 게 사실 세계와 떨어져 개념의 세계에 있다는 걸 알고 써야 한다”고 했다. 문자의 세계가 말하는 ‘동서고금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진리’는 거짓말이니 속지 말고, 문자에서 현실로 내려오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글로 표현된 하나님은 현실엔 없어요. 테레사 수녀가 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보셨느냐는 기자 질문에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다고 답했죠. 성경 글귀로 표현된 하나님이 현실엔 없었다는 것이죠. ‘언어로 담으면 사실에서 떠난다’는 노자 1장과 같은 말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문자 속 개념은 ‘보편의 횡포’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예전엔 다 다르게 먹었어요. 불모지 사람들도 거기에서 나는 걸 먹으며 생명을 유지했죠. 지금은 슈퍼나 백화점에서 만들어놓은 걸 소비해야 합니다. 똑같이 먹어요. 그게 없으면 굶습니다. 기계적 상품은 보편(관념)에 의해 존재하죠. 입맛도 바꿔놓았어요.” 그가 보기에 동양사상은 절대나 보편이란 관념과 거리가 멀다. “동양에선 같은 게 없어요. 동일 시간도 없고 하룻밤 자면 새로운 날입니다. 진리도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진리여야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약을 만들어놓고 파는 건 말이 안 되지요. 환자가 여자냐 남자냐, 약을 아침에 먹느냐 저녁에 먹느냐에 따라 처방이 달라요. 국악도 공연장이 실내냐 실외냐, 청중이 누구냐 또는 날씨나 공연자 기분에 따라 음악이 다 달라요.”
그는 41살 되던 1979년부터 경기 가평군 설악면 산골에 집을 짓고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초등생 자녀들도 시골로 전학을 시켰다. “그때 친구에게 ‘남보다 앞서지 못하니 난 뒷걸음질 치려고 한다’고 편지를 썼죠. 대학 연구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사흘 동안 몰아 강의를 했죠.” 2년 전 척추를 다쳐 수술한 뒤 병원에 가까운 별내면으로 옮겨왔다. 거동이 불편하고 숨도 차지만 지금도 주말이면 집에서 대학원생이나 직장인들 대상으로 노자 장자 심화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운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대학에서 학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자기 생각만 진리라고 했죠. 이론을 현실에 적용할 땐 그게 절대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성리학은 불교나 노장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조선 시대에 노장은 사문난적이었어요. 지금 정치인들도 자기가 생각한 것만 진리라는 생각이 강해요.”
‘좋은 삶’을 묻는 말에 “욕심을 안 부리고 사는 삶”이라고 답한 송 교수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불교의 진리는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죠. 치매에 걸리지 않고 그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송 교수는 2007년부터 지금 살고 있는 남양주시 별내면 집에서 노자·장자 강의를 해오고 있다. 서울 강남과 분당 지역에서도 수강생이 온다고 했다. “고인이 된 김충렬 교수와 신학자 변선환 선생이 제 글을 좋아했어요. 쉽게 알아먹을 수 있다고요. 요즘은 금강경과 보조국사 지눌의 법어집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는 “성인은 그들이 살았던 당대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했던 분들”이라면서 “인간이 안다는 지식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첫 산문집 이래 5권 정리
“먹물 먹은 뒤부터 지식 굴레 갇혀” ‘노장사상’ 이단 취급 딛고 ‘박사’
79년부터 서울 벗어나 산촌생활
“욕심을 안 부리고 사는 삶” 추구 왜 소설을? “과학문명이 대단한 것 같지만, 불교나 노장사상에서 보면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내 글은 이런 사고에서 나와요. 이 세상 못된 짓 하는 이들은 모두 ‘아는 사람들’입니다. 불교나 노장사상은 ‘아는 것을 버려라’고 하지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배웠지만 나이 들어 보니 (인간이 동물보다) 별로 우월한 것 같지 않아요. (인간은) 나이 들면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못되게 사는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이란 ‘먹물 든 사람들’이다. “책에 의해 머리에 익힌 지식이 먹물이죠. 그 지식은 잊어버리기 힘들어요. 지식에 의해 움직여지면 진실을 외면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문자에 의해 아는 지식에 의존하는 겁니다. 그 문자가 담긴 게 서책이죠. 노장은 문자에서 사실을 찾지 말라고 합니다.” 그는 “문명의 수레바퀴는 멈출 순 없지만, 문자라는 게 사실 세계와 떨어져 개념의 세계에 있다는 걸 알고 써야 한다”고 했다. 문자의 세계가 말하는 ‘동서고금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진리’는 거짓말이니 속지 말고, 문자에서 현실로 내려오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글로 표현된 하나님은 현실엔 없어요. 테레사 수녀가 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보셨느냐는 기자 질문에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다고 답했죠. 성경 글귀로 표현된 하나님이 현실엔 없었다는 것이죠. ‘언어로 담으면 사실에서 떠난다’는 노자 1장과 같은 말입니다.”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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