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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순간의 기억이 삶을 견디게 한다

등록 2017-11-16 19:34수정 2017-11-16 20:14

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나무옆의자·1만3000원

신인 작가 이재량(사진)의 첫 장편 <노란 잠수함>은 로드 무비를 닮았다. 화자인 스물아홉살 청년 이현태가 두 노인 김난조와 나해영, 그리고 열아홉살 여고생 모모를 자신의 승합차에 태우고 안산을 출발해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순천과 무안을 거쳐 목포까지 가는 2박3일의 여정이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소설은 또 일행이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는 범죄 및 추격물의 외양을 띠고 있기도 하다. 일당이 경찰에 붙잡힐 뻔한 위기를 몇차례나 가까스로 넘기며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은 상업 영화의 추격 장면을 연상시키도록 속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취직이 여의치 않아 승합차 ‘육봉 1호’에 포르노물을 싣고 다니며 파는 성인용품업자 현태. 그가 단골로 다니는 만화방 ‘노란 잠수함’의 두 노인 난조와 해영이 어느날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들을 부산까지 데려다주면 거금 백만원을 주겠다는 것. 내키지 않아 하는 현태를 회유하고 협박까지 마다 않은 끝에 결국 승낙을 얻어 내지만, 떠나는 날 아침에 보니 차 안에는 안산 지역 일진인 여고생 모모가 몰래 타 있다. 실랑이 끝에 모모까지 일행이 되어 부산으로 향하는데, 우연과 오해가 겹쳐 현태에게는 연쇄살인과 납치 혐의로 지명 수배령이 내려진다. 경찰이 뒤를 쫓는 가운데 ‘공동운명체’가 된 네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도와 가며 위기를 넘기고 각자의 상처를 이해하며 보듬게 되는 과정이 유쾌하고 따뜻하다.

사진 이재량 제공
사진 이재량 제공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하반신 마비가 된 김 노인, 그의 부하 출신으로 그동안 홀로 김 노인 수발을 들어 왔으나 치매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나 노인. 막다른 구석에 몰린 두 사람이 현태에게 접근한 것은 전쟁 중 잠깐 맛보았던 평화와 사랑의 공간 ‘수이진’을 향해 단둘이 배를 타고 떠날 생각에서였다. 사실상 자살에 가까운 계획이지만, 이들에게 수이진의 기억은 삶 전체와 맞바꿀 만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한테는 그날이 있었응께. 타잉하고 보낸 그날. 그 하루의 기억으로 여지껏 버틴 것이고, 그것이먼 되네. 사람이 사는 데는 말이시, 하루먼 충분하다네. 인생에서 젤로 빛나는 하루, 그 하루만 있으믄 사람은 살 수가 있는 것이여.”

예측불허, 좌충우돌, 긴장 충만의 도피행은 스릴보다는 웃음을 더 자아내는데, 작가는 삶에 관한 진지한 통찰의 말로 적절히 균형을 잡는다.

“우리는 모두 싸우고 춤추고 웃는다. 운명을 살아내기 위해 싸우고 운명을 사랑하기 위해 춤춘다. 축제는 전쟁터 한가운데 있고 낙원은 지옥 한가운데 있다.”

이재량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14년 <문학의오늘> 겨울호에 단편소설 ‘캐럴’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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