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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최시한, 21년 만의 소설 복귀

등록 2017-12-07 20:11수정 2017-12-07 20:37

자전적 성장소설 ‘간사지 이야기’ 출간
고향 보령에서 보낸 60~70년대 이야기
“내년 정년퇴임 뒤엔 소설에 매진할 것”
간사지 이야기
최시한 지음/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연작소설집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1996)의 작가 최시한이 또 다른 연작소설 <간사지 이야기>로 돌아왔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수록작인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과 ‘구름 그림자’ 등이 교과서에도 실려 청소년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이후 소설로는 21년 만인 <간사지 이야기>는 고향인 충남 보령 간사지 마을을 배경으로 1960~70년대에 걸친 작가 자신의 성장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간사지’란 간석지를 둑으로 막아 개간한 땅, 그러니까 간척지를 가리키는데,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살려 썼다.

<간사지 이야기>는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간사지’와 12개의 짧은 이야기, 그리고 에필로그 격인 ‘잔치’로 이루어졌다. 이야기들은 주인공 ‘나’의 유년기에서부터 서울에서 교사로 일하며 소설을 습작하던 20대 후반 무렵까지를 다룬다. 편마다 독립된 이야기들이 모여 주인공의 성장과 변화하는 시대상, 고향 마을 사람들과 자연환경 등을 몽타주 기법으로 그려 보인다.
고향인 충남 보령에서 보낸 성장기를 그린 자전적 소설 <간사지 이야기>를 낸 작가 최시한. “정년퇴임 뒤에는 고향에 내려가 살면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삶에 무언가 이바지할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향인 충남 보령에서 보낸 성장기를 그린 자전적 소설 <간사지 이야기>를 낸 작가 최시한. “정년퇴임 뒤에는 고향에 내려가 살면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삶에 무언가 이바지할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당숙모가 내주시는 감주로 목을 축이고 우리 일가는 성묘에 나섰다. 부근의 산자락에 있는 묘에 가기 위해 논둑과 밭둑을 건너갈 때면 줄이 매우 길었다. 내가 그 줄에 끼어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첫번째 이야기 ‘왕소나무 숲’에서 아직 어린 주인공은 최씨 일가의 일원으로 성묘길에 오른다. 어른들 틈에 끼여 성묘하러 가는 긴 줄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아이는 흡족해한다. 성묘를 마친 다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새 며느리가 음식을 내오면서 자신을 ‘도련님’이라 부르는 것 역시 그를 기쁘게 한다. 이 단계에서 주인공과 세계는 갈등 없이 조응한다. 그러나 큰집이 있는 마을을 병풍처럼 두른 왕소나무 숲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가 “그렇게 오래되고 아름다운 게 왜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문득 사라질 수가 있는지” 의아해하는 데에서 보듯, 유년기의 순수와 행복은 머지않아 오염되고 부서질 운명이다.
신작 장편소설 <간사지 이야기>를 낸 최시한 숙명여대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작 장편소설 <간사지 이야기>를 낸 최시한 숙명여대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주인공이 유년기의 알을 깨고 경험과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펄, 펄, 펄, 휘날리는/ 재건의 깃발 아래서,/ 조국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겠느냐?”는 ‘재건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다가 “군인들이 총 들구 일어나더니, 그런 노래를 불르라구 헌단 말여?”라는 어른의 핀잔을 접했을 때, 서울 명문대에 진학했던 동네 형이 무슨 일로인지 쫓기듯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결국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우연히 한밤의 분주한 연탄 공장을 목격했을 때 주인공은 세계가 감춰 두었던 비밀에 눈을 뜨고 키가 크듯 정신 역시 성장을 이룬다.

“다들 잠이 든 한밤중에 뿌우연 연탄 가루 속에서 연신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노동하는 광경이 딴 세상처럼 보였다. 미처 모르고 있었던, 하지만 내 시골집 부근에 있는 세계.”

<간사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듣다 보면, 어쩐지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이 떠오른다. 어린아이를 주인공 삼아 가족과 고향 마을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다는 소재의 유사성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물들의 구수한 말투가 영락없다. 최시한이 이문구와 같은 보령 출신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런 말투다.

“니 선생이 ‘장좌울’ 사는 류씨 집안 사람인 거 물르네? 노인을 모시고 있으니, 갖다 디리구 오너라. 내가 뭇 가서 죄송허다는 말씀두 디리구.”

신작 장편소설 <간사지 이야기>를 낸 최시한 숙명여대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작 장편소설 <간사지 이야기>를 낸 최시한 숙명여대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작가는 “내년 2월 대학(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에서 정년퇴직하는데, 그 기념 삼아서 오랜만에 소설을 써봤다”고 말했다. “논문 부담 때문에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습니다. 정년 뒤에는 소설로 돌아갈 생각인데, 오랜만에 쓰는 거라 두렵고 긴장도 되더군요. 고민 끝에 내가 살아온 얘기부터 시작하자 싶어 2년 전부터 틈틈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젊은 세대 독자들에게 우리 세대의 삶을 최대한 쉽고 간명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세대 간, 계급 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통 부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 소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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