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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 번역은 설명 아닌 감흥을 담아야”

등록 2017-12-12 19:11수정 2017-12-12 20:36

청송서 1차 한중시인회의
국경과 언어 떠나 서로의 시 낭독
번역의 ‘이상과 현실’ 의견 나눠
11일 경북 청송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제1차 한중시인회의에서 문학평론가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가운데 마이크 든 이)가 발언하고 있다.
11일 경북 청송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제1차 한중시인회의에서 문학평론가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가운데 마이크 든 이)가 발언하고 있다.
“오늘 낭독하신 두 시 ‘이슬’과 ‘초록 기쁨―봄숲에서’를 보면 정현종 시인은 자연을 매우 사랑하는 시인인 것 같습니다. 정현종 선생 시들의 중국어 번역은 비교적 성공한 번역이라 생각합니다. 행과 연의 구분, 한 행의 길이 등에서도 건축적 미학이 드러납니다. 시인 자신의 낭송에서 느껴지는 어감 역시 중국어에서 어느 정도 보전되었다고 봅니다.”

중국 문학평론가 우쓰징 수도사범대 교수는 정현종 시인의 시 낭독을 듣고 그 작품의 중국어 번역 텍스트를 읽은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11일 경북 청송 대명리조트에서 ‘번역의 이상과 현실’을 주제로 열린 제1차 한중시인회의 오전 행사에서였다. 정현종 시 ‘이슬’은 “강물을 보세요 우리들의 피를/ 바람을 보세요 우리의 숨결을/ 흙을 보세요 우리들의 살을”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객주문학관이 주최하고 청송군과 한국문학번역원이 후원한 제1차 한중시인회의에는 한국에서 정현종·천양희·김명인·이시영 시인과 평론가 김주연·홍정선·오형엽, 중국에서 수팅·옌리·쯔촨 시인과 평론가 우쓰징·장뤄수이가 참여했다. 2007년부터 지난 10월까지 해마다 두 나라를 11차례 오가며 열린 한중작가회의 후속 행사로 마련된 모임이었다.

정 시인은 “나는 시의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전부터 말해 왔지만, 사실은 나 역시 남의 시를 번역한 적이 있다. 국경과 언어를 떠나 시인들은 말에 대한 집착과 숭배라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정현종의 시를 번역했으며 이날 행사에서 통역을 맡기도 한 중국의 한국문학자 쉬리밍 난징대 교수는 “정현종 선생의 시를 읽으면서는 모종의 신성한 느낌을 받으며 행복했지만, 중국 독자들이 내 번역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커다란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현종 시인에 이어 중국 몽롱파를 대표하는 수팅 시인의 시 ‘신녀봉’과 ‘혜안(惠安)의 여인’ 낭독과 토론이 이어졌다. 번역문에서도 원문 그대로 표기된 ‘포공영’(蒲公英)이 다름 아닌 민들레라든가, ‘당광’으로 번역된 ‘여정’(女貞)이 식물 이름뿐만 아니라 여성의 정조를 아울러 가리킨다는 기초적 지적에서부터, 중국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수팅 시 세계에 관한 깊이 있는 평과 토론도 오갔다. 이시영 시인은 ‘시월’과 ‘당숙모’라는 짧은 시 두 편을 낭독했다. 후다닥, 배시시, 우수수, 구시렁구시렁, 되똥되똥 같은 순우리말 의태어를 중국어로 어떻게 옮기는지가 주로 논의되었다. 오후에는 천양희·김명인 시인과 쯔촨·옌리 시인의 작품과 번역 텍스트를 두고 토론이 이어졌다. 천양희 시인의 시 ‘기차를 기다리며’와 ‘불멸의 명작’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낱말 ‘기적’, 그리고 ‘바다’와 ‘바닥’, ‘철썩이다’와 ‘철석같이’처럼 유사한 발음을 지닌 일종의 말장난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뜨거웠다. 옌리의 시 ‘햇살 빛나는 일요일’과 ‘아침 시장의 태양’을 두고 김명인 시인은 “옌리 시인의 낭독을 들어 보니 경쾌하고 발랄한 어조가 두드러지는데, 한국어 번역문은 서술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 듯하다”며 “번역시에서는 의미의 설명이 아니라 원시가 지닌 느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인들의 낭독과 토론에 앞서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교수는 ‘번역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번역은 원본 텍스트에 충실해야 하며, 번역가는 전파자의 문화와 수용자의 문화를 동등하게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가 영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얻었지만, 번역자의 파격적인 손질을 거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홍 교수의 번역론은 이상론이긴 한데 현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꿈”이라며 “번역에서는 출발어보다는 도착어가 중요하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홍 교수는 “한중작가회의와 마찬가지로 한중시인회의 역시 해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송/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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