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지음/창비·8000원 장석남(사진)의 여덟번째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에는 사무치는 슬픔도 격렬한 고통도 없다. 시집 제목에 ‘근심하다’라는 말이 들었지만, 근심의 형태와 강도는 독자가 감당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수준이다. 표제작 격인 ‘입춘 부근’에서 화자가 근심하는 것은 봄이 와서 꽃이 피었다가 졌을 때 그렇게 진 꽃잎을 발로 밟게 되는 일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근심이다. 사무침과 격렬함이 없다는 것이 이 시집의 단점이라는 말은 아니다. 사정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장석남의 시집이 지닌 미덕은 그런 사무침과 격렬함을 눅이고 삭이어 여유와 관조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있다. 개울에서 주워온 돌을 베개 삼아 베어 본다는 이야기에서 말을 빌려오자면, “물과 눈보라와 구름의 여러 부족, 피륙과 똥오줌과 정액이 없는 생(生)들이 날이 날마다 베고 자던 한 물건의 소식”(‘주워온 베개’)을 장석남의 시는 지향하는 듯하다. 그것은 물론 어느덧 쉰을 넘긴 나이와 시력 30년에서 오는 연륜에서 비롯된 미덕이다.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소풍’ 전문) 시집을 여는 시 ‘소풍’에서 나비 나는 철에 길을 나선 화자는 바위와 더불어 살겠노라 청해 보다가는 허탕을 친 채 돌아오고 만다. 답은 더디기만 하고, 언제고 답이 오긴 오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화자를 낙담과 절망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옷깃으로 나비 날리며 바위를 찾아갔다가 초록이나 묻혀 터덜터덜 돌아오는 행보 자체가 ‘소풍’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위한 것도 아니요 보물을 찾으려는 것도 아닌, 순수한 무목적성의 소풍은 장석남 시에 대한 비유이자 삶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