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
제임스 글릭 지음. 황혁기 옮김. 승산 펴냄. 2만8000원
제임스 글릭 지음. 황혁기 옮김. 승산 펴냄. 2만8000원
열정적 봉고 연주
플레이보이 기질도
현대물리학 거목 파인만
생애와 과학 성과 담아
혼돈이론의 대중과학서 <카오스>의 지은이인 기자 출신 작가 제임스 글릭(51)이 쓴 <천재: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승산 펴냄)은 현대물리학의 열쇠말 가운데 하나인 ‘파인만’을 말하는 두툼한 전기물이다. 미국 물리학자 파인만(1918~1988)이 숨지고 나서 4년 뒤인 1992년에 처음 출간됐지만 우리말 번역은 미뤄지다가 지금에야 출간됐다.
무엇보다 복잡한 자연현상의 이치를 단순명쾌하게 꿰뚫어보는 파인만의 과학적 통찰력을 그의 전기에서 좀더 가까이 저공비행해 엿볼 수 있는 건 ‘파인만 애독자(파인마니아)’들한테는 좋은 일이다.
지은이는 ‘천재’라는 쉽잖은 찬사를 책 제목으로 내걸었다. 논문·노트·편지 조사와 주변인물 인터뷰를 거쳐 전기를 쓴 지은이가 보기에, 그만큼 2차대전 이후 물리학의 새 세대를 이끈 파인만의 독창적 사유방식은 남들이 흉내내기조차 힘든 것이었고, 게다가 난해한 과학을 ‘아름답게’ 설명하는 재능은 그 천재성을 입증해주는 것이었기에. 그는 ‘평범한’ 천재가 아니라 보통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적’ 천재로 그려졌다.
‘천재’의 모습은 너무도 다양해 ‘마법적’이다.
그는 양자론의 개척자였다. 또 미국의 핵폭탄 제조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연구책임자였고, 유명한 ‘파인만 다이어그램’의 창안자였으며 노벨상 수상자였다. 또 열정 넘치는 봉고 연주자였고, 술집에서 여자 꼬시는 법까지 능했던 플레이보이 기질도 지녔다. 초소형 기계의 가능성을 제안해 요즘엔 ‘나노과학의 아버지’로도 불리고 한때엔 디엔에이(DNA) 돌연변이 연구에도 기여했다. 1986년 미국 우주선 챌린저호의 폭발 때엔 참사 원인을 ‘위험’과 ‘확률’의 개념으로 파헤친 조사위원이었다.
대부분 전기가 그렇듯이 이 책 역시 파인만의 삶과 과학을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전한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중심지인 로스앨러모스에서 진행된 핵폭탄 연구에서 파인만이 핵폭발 효율 방정식의 여러 난제를 해결했던 이야기, 그렇지만 핵폭탄 투하로 전쟁은 끝났으나 파인만을 비롯한 핵폭탄 개발자들이 겪어야 했던 방황, 전쟁 이후 새롭게 제기된 물리학의 난제들에 도전했던 파인만과 과학자들의 이야기들…. 1948년 젊은 파인만이 물리학계 거장들 앞에서 ‘파인만 다이어그램’의 개념을 처음 발표하며 여러 반론과 의문을 들어야 했던 ‘포코노 비밀회동’의 현장 분위기는 물리학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듯 야릇하고도 흥미롭다.
책은 곳곳에서 파인만의 ‘과학 하는 방법’, 자연계가 던져준 수수께끼들을 대하는 그의 방법들을 드러낸다. 그가 철학을 향해 던진 조롱들은 그의 과학 방법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파인만이 보기에, 철학자들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얼마나 부풀려 제 편할대로 해석하고 있었던가.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며 현상은 기준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물리학에서 입증됐다’거나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은 그것이 양자역학적이기 때문’이라는 식의 해석은 파인만한테 ‘세상의 규칙성을 멋대로 상상하지 말라’는 면박을 들어야 했다.
그에게 자연계를 이해하는 과학적 사고의 출발점은 원자였다. “그러면 대재앙이 닥치는 바람에 과학 지식이 모두 소실되고 오직 한 문장만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할 때, 단어 수는 가장 적으면서도 정보는 가장 많이 담긴 문장은 무엇이겠습니까?” 파인만은 곧이어 그것은 “만물은 원자, 즉 좀 떨어져 있으면 서로 끌어당기지만 눌릴 정도로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내는 식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은 입자로 만들어졌다는 문장”이라고 말한다.(77쪽, 550쪽) 이 전기물엔 기발하고도 의미심장한 파인만의 갖가지 언행들이 세세히 담겼다. “지능지수 125”였던 학생시절에 지은 그의 싯구들도 담아냈다. 그렇게 하고도 결국에 지은이 글릭이 책의 첫머리와 마지막에서 파인만의 삶과 과학을 드러낼만한 말로 고른 것은 한 가지다- “정해진 것은 없어.”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그에게 자연계를 이해하는 과학적 사고의 출발점은 원자였다. “그러면 대재앙이 닥치는 바람에 과학 지식이 모두 소실되고 오직 한 문장만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할 때, 단어 수는 가장 적으면서도 정보는 가장 많이 담긴 문장은 무엇이겠습니까?” 파인만은 곧이어 그것은 “만물은 원자, 즉 좀 떨어져 있으면 서로 끌어당기지만 눌릴 정도로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내는 식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은 입자로 만들어졌다는 문장”이라고 말한다.(77쪽, 550쪽) 이 전기물엔 기발하고도 의미심장한 파인만의 갖가지 언행들이 세세히 담겼다. “지능지수 125”였던 학생시절에 지은 그의 싯구들도 담아냈다. 그렇게 하고도 결국에 지은이 글릭이 책의 첫머리와 마지막에서 파인만의 삶과 과학을 드러낼만한 말로 고른 것은 한 가지다- “정해진 것은 없어.”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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