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미 소설 <노는 인간>
구경미(33)씨의 첫 소설집 <노는 인간>(열림원)의 주인공들은 무위와 회의의 적극적인 실천자들이다. 이들은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주저하거나 의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입증한다. 표제작의 제목에 쓰인 ‘노는’은 적극적·능동적으로 놀이에 참여한다는 뜻과 함께, 행동의 결여라는 소극적·부정적인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일단 후자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표제작의 주인공에게 동네 슈퍼의 주인 여자가 “사람이 할 일이 있어야지 할 일이 없으면 어떡해”(19쪽)라며 안쓰럽다는 듯 건네는 말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의 동거인에 따르면 주인공이 하는 ‘일’이란 “몇 시간씩 게임 하고 글 조금 쓰고 다시 게임 하고 심심하면 책 읽고 그런 거”일 뿐 “친구도 안 만나고 운동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열두 평짜리 집 안이 행동반경의 다”(10쪽)이다. 동거인이 생각하기에 게임과 글 쓰기, 책 읽기란 일다운 일이 아니다.
<초지일관 그녀는>의 주인공에게 상황은 한층 극단적이다. “그녀는,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걸까, 라고 마흔세 번쯤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살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35쪽) 살아야 할 이유는 물론 살지 않아야 할 이유도 알지 못한다는 데에 그의 도저한 절망이 있다. ‘살지 않아야 할 이유’란 어찌 보면 ‘살아야 할 이유’의 반어적 표현일 수도 있는 것. 그렇다면 소설 마지막에 그가, 아마도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것을 삶의 (무)의미에 대한 나름의 각성의 결과라 볼 수 있을까.
<형제이발관>과 <광대버섯을 먹어라>의 주인공들이 나란히 (교통)사고를 당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들이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비록 자의에 의한 결과는 아니지만 무목적적이며 무기력한 이들의 삶의 태도는 계산과 욕망에 휘둘리는 현대의 삶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부각되는 듯하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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