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근대적 주체 되기의 어려움이 죄의식과 부끄러움 낳았다”

등록 2017-12-28 20:08수정 2017-12-28 20:29

서영채 교수 연구서 ‘죄의식과 부끄러움’
이광수에서 한강에 이르는 한국소설 백년
최인훈 ‘광장’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
죄의식과 부끄러움
서영채 지음/나무나무·3만2000원

이광수에서 한강에 이르는 한국 소설의 핵심에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있다. <유정>(이광수)의 주인공 최석과 <광장>(최인훈)의 이명준은 모두 자기가 짓지 않은 죄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기꺼이 죽음으로 나아갔다. 이청준의 초기작 ‘병신과 머저리’에서도, 임철우 소설 <백년여관>에서도 주인공들은 부끄러움과 죄의식의 세례를 거쳐서야 비로소 근대적 주체로 설 수 있게 된다.

국문학자 서영채 서울대 교수(아시아언어문명학부)가 새로 낸 연구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에서 펼치는 주장이다. 이 책은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부터 한강과 김경욱, 이해경의 2010년대 작품들까지 100년에 걸친 한국 소설을 죄의식과 부끄러움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들여다본다. 노예와도 같은 식민지 백성으로 출발해, 전쟁과 가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가까스로 근대적 주체를 세우는 데 성공한 한국인들에게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주체 되기의 전제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만년 장편 <마음>을 보면 죄의식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크게 나와요. 그런데 그런 터무니없는 죄의식이라면 이광수의 소설들에서 너무도 많이 보았던 것이거든요. 그게 연구의 출발이었습니다.”

27일 오후 서울대학교 인문대 연구실에서 만난 서 교수는 “그동안 해온 한국문학 평론과 연구, 그리고 이론 공부를 합치니 이런 책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 소설 100년의 역사를 죄의식과 부끄러움이라는 열쇳말로 풀어낸 연구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의 지은이 서영채 교수. “17세기 서양 바로크에서 홍상수 영화까지 이어지는 공간과 장소, 풍경에 관한 책을 다음 작업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 소설 100년의 역사를 죄의식과 부끄러움이라는 열쇳말로 풀어낸 연구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의 지은이 서영채 교수. “17세기 서양 바로크에서 홍상수 영화까지 이어지는 공간과 장소, 풍경에 관한 책을 다음 작업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유정>의 주인공 최석은 수양딸 격인 정임과 자신 사이에 수상쩍은 소문이 돌자 시베리아 ‘유형’을 자처해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죄가 없는 최석의 이런 자기 처벌,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유죄성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근대적 주체 되기를 향한 갈망과 그 불가능성”의 결과라는 것이 서 교수의 판단이다.

최인훈 소설 <광장>에 대한 해석은 더욱 흥미롭다. 포로수용소에서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했던 이명준이 인도행 배에서 투신하는 결말은 흔히 전쟁통에 죽은 연인 은혜와 ‘딸’을 향한 사랑 때문으로 풀이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랑은 아무런 뜻이 없는 말”이라고 서 교수는 단언한다. ‘빼앗긴 국권을 자기 힘으로 찾지 못했고 제 나라의 분단과 내전을 막지 못했던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이명준이 유일하게 택할 수 있는 길이 곧 자살이었으며, “<광장>의 서사의 선은 (…) 이명준이 자기가 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의 실패를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이청준 단편 ‘병신과 머저리’에는 전쟁에 참전했던 의사 형이 당시 일을 소설로 쓰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부상당한 채 함께 낙오됐던 김 일병의 죽음이 누구의 탓인가 하는 것인데, 서 교수는 형 자신과 작가 이청준 모두에게서 “가해자의 자리에 서고자 하는 의지”를 읽어낸다. 그가 보기에 이것이 “한국전쟁이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이청준 특유의 방식”이다.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영채 서울대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청준의 또 다른 단편 ‘키 작은 자유인’에서 가난은 물론 “속물적 부끄러움”의 대상이지만, 작가가 그 일화를 거듭 되뇌며 결코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것은 그 가난이 또한 “윤리적 주체가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자긍심의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것이 신경숙 소설 <외딴방>에서 보이는 “성공서사에 대한 거부감, 그런 구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한편 광주항쟁 당시 죽음이 두려워 도망쳤던 데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소재로 삼은 임철우 소설 <백년여관>은 “죄의식을 통한 주체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서 교수는 판단한다. 특히 80년 5월 광주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국에서 이루어진 근대적 주체 형성의 역사가 마침내 도달한 정점을 뜻한다”는 것이 그의 낙관적 결론이다.

서 교수는 “책은 여기서 끝나지만, 김승옥과 윤흥길, 특히 박완서와 오정희를 거쳐 공지영과 은희경으로 이어지는 여성 작가들 소설 속 ‘원한’에 대한 연구를 후속 작업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