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질서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로
백영서 교수등 10여명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한국 학계가 ‘지적 재산권’을 주장해도 좋을만한 개념이 하나 있다.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다. 와다 하루끼 등 몇몇 일본 학자들도 이를 염두에 둔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활발한 논의 마당은 한국이다.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창비 펴냄·2만3000원)는 그런 지적 자부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책이다. 동아시아 담론에 왜 한국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을 담고 있다.
중국의 ‘중화’, 일본의 ‘대동아’와 구분되는 한국의 ‘동아시아’ 담론은 제국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백영서 연세대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그동안의 동아시아는 “중국, 일본, 미국이란 중심국가가 교체되면서 국제관계를 규정”해왔다. 한반도는 언제나 그 ‘주변’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 학자들은 사상 처음으로 기존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동시에 또다른 제국질서의 등장을 막아서려 하고 있다. 한국 학자들이 말하는 ‘동아시아’에는 그 담론을 주도하는 자랑스러움 외에도 절박한 상황에 대한 비애의 심정이 함께 녹아 있다. 백 교수는 “한국이 동아시아를 말하는 것은 중심국가에 주변국가들이 종속되는 중화제국, 일본제국과 달리 주변에서 중심으로 확산되는 지역통합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말한다.
백 교수를 비롯해 김기정·김명섭·임성모·정용화(이상 연세대), 강진아(경북대), 김경일(한국학중앙연구원), 박태균(서울대), 이남주(성공회대) 교수 등 10여명이 이 책의 집필에 참여했다. 모두 동아시아 담론에 천착해왔거나 이를 이끌고 있는 학자들이다.
책의 큰 줄기는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궤적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화이질서, 대동아공영권, 미국의 패권 등이 그 핵심을 이룬다. 각각이 어떤 특징적인 구조 아래 형성됐고, 그 붕괴와 해체를 불러온 배경은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어떻게 공동체의 질서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각 학자들의 글마다 녹아 있다.
결론격인 ‘탈중심시대의 새로운 지역구상’ 편에서 이남주 교수는 “다자간 안보협력을 지지하되 개인적 인권을 보장하는 이른바 인간안보에 관심을 갖고 경제 면에서는 내부 경제 발전단계의 차이를 고려해 각국의 발전모델을 조정해나가야 한다”며 그 미래를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비교적 발전된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등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협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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