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정치를 꿈꾸다-식민지, 전쟁, 분단시대의 극장예술
이상우 지음/테오리아·1만9000원
극장과 정치는 서로를 욕망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처럼 수완 좋은 정치가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드라마에서 나옴직한 선명한 대립구도를 만들어내고, 스펙터클한 이벤트를 벌인다. ‘극장정치’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그런가 하면 극장에서도 정치가 펼쳐진다.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주입하려는 쪽과 이에 맞서는 이들, 여성을 끊임없이 대상화·주변화하려는 시도, 절망하는 여성들의 분투, 예술의 자유를 옥죄는 독재정권의 억압, 검열에 대한 저항 등 스크린은 쟁투의 현장이었다. 연극평론가인 이상우 고려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후자인 극장정치를 주목한다. 식민지, 전쟁을 거쳐 분단체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여년 간 연극과 영화에서 전개된 정치적 이슈들을 짚었다.
지은이는 식민지시대에 등장한 역사극을 ‘기억의 정치투쟁’으로 분석한다. 일본인들은 근대 이후 일본에 들어온 첫 해외 망명객 1호였던 김옥균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그의 비극적 죽음을 정치적 허무주의로 접근했다. 풍운아 김옥균은 민족 수난 서사와 연결돼 대중 미디어에서 인기 있는 소재로 활용됐지만, 한·중·일이 힘을 합쳐 서구 열강의 침입에 맞서자는 그의 ‘삼화주의’는 일본의 대동아공영 구상과 겹쳐지며 군국주의 색채에 휩싸였다.
최인규 감독이 연출한 1941년작 영화 <집없는 천사>. 경성(서울) 청계천 다리 밑에서 생활하는 고아들을 배우로 캐스팅해 이곳의 삶을 재현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근대 신여성들은 문화계로부터 화려한 초청장을 받았지만 이내 스캔들의 무덤에 갇히곤 했다. 유학파 1세대인 작가 김명순은 일본 유학 시절 육군사관생도 이응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을 하려고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되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가해자는 조선인 최초로 일본군 대좌로 승진하고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김명순이 작품을 발표하면 “처녀 때에 강제로 남성에게 정벌을 받았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더 한층 히스테리가 되어가지고 문학중독으로 말미암아 방종하였다”(김기진의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는 등 저주에 가까운 혹평에 시달렸다. 정신질환을 앓다가 일본에서 불우한 삶을 마친 김명순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1966년 평론가 임종국 등이 “남성 작가들의 무지와 몰염치 전횡으로 인하여 희생당하고 만 것”이라고 일갈하고 나서야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1955년작 <꿈>. 1950년대 초반 <라쇼몽> 등 일본 영화가 잇따라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자 그에 자극을 받아 제작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지은이는 분단체제를 대표하는 극장정치의 주인공으로 남과 북 양쪽에서 작품 활동을 한 신상옥 감독을 꼽는다.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 등 1950~60년대 흥행작을 쏟아낸 신상옥은 박정희·김종필 등의 후원으로 안양영화촬영소를 인수하고 제작사 신필름을 차리며 ‘영화계의 마키아벨리’로 군림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검열정책에 반대하다 눈 밖에 나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78년 남한에서 ‘실종’된 그는 1986년 다시 탈북하기까지 북한에서 20편의 영화를 제작·연출·지도하면서 <소금> <탈출기> 등 사실적인 묘사와 개성 있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북한이라는 큰 스폰서를 업고”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신상옥의 삶을 소개하며 지은이는 남북한 분단체제에서 예술에 가해진 억압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신상옥의 납북(혹은 탈남)은 영화가 인생의 전부였던 이에게 영화 제작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남한 정부의 폭력적인 영화정책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경우도 최고권력자가 시혜처럼 제공한 특혜와 지원만으로 진정성 있는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