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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만의 방’을 찾아서

등록 2018-02-08 19:48수정 2018-02-08 20:10

스웨덴 소설 ‘한 시간만 그 방에’
직장 동료들과 불화하는 주인공
‘그 방’에만 가면 멋지고 유능해져

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 지음, 윤미연 옮김/푸른숲·1만3000원

“저는 집단 따돌림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지난 몇 주 동안 따돌림이 계속됐습니다. (…) 그건 아마도 여러분이 저로 인해 불안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점은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항상 저항에 부딪히니까요. 평범한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 때문에 불안해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칼손의 소설 <한 시간만 그 방에>에서 주인공 비에른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신참인 자신을 따돌린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인 그는 몇 주 전 근무처를 옮겼는데,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게 된 이들이 자신의 특출한 능력을 시샘한 나머지 단체로 따돌린다는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요나스 칼손은 배우 겸 극작가로 출발해 소설로 영역을 넓힌 작가다. 그의 첫 장편인 <한 시간만 그 방에>는 세계 12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관공서 사무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관료주의를 풍자한 카프카와 멜빌의 소설에 견주어지며 호평을 받았다.

제목에도 나오는 ‘방’은 이 소설에서 매우 핵심적이며 상징적인 역할을 맡는다. 사무실의 다른 동료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비에른에게만 존재하는 이 비밀의 방은 그가 업무에 지쳤거나 동료들과 관계 정립에 애를 먹을 때마다 찾아가서 ‘재충전’을 하는 공간이다. 그 방에만 가면 비에른은 자신감을 되찾고 업무 능력도 향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방 안에 전신 거울이 있었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흘끗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정말 멋져 보였다. (…) 내 모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편안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감 넘치고 박학다식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웨덴 작가 요나스 칼손의 소설 <한 시간만 그 방에>는 관공서 사무실을 배경으로 소통 부재와 인간관계 왜곡의 실상을 그린다. 사진은 국내의 한 기업 사무실 풍경.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스웨덴 작가 요나스 칼손의 소설 <한 시간만 그 방에>는 관공서 사무실을 배경으로 소통 부재와 인간관계 왜곡의 실상을 그린다. 사진은 국내의 한 기업 사무실 풍경.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문제는 이 방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것. 그 방에 들어간 비에른의 모습이 동료들 눈에는 벽 앞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것으로 비친다. 동료들은 그런 그를 보며 불안해하고, 결국 상사의 지시로 비에른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다시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비에른의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의 묘미는 그가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사실에 있다. 매일 아침 30분 일찍 출근하고, 55분 노동에 5분 휴식이라는 자신만의 일과표에 따라 움직이며, 직장 동료들과 불필요하게 어울리는 일을 피하는 비에른은 얼핏 매우 성실하며 원칙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가 매우 ‘질리는’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동료들과의 협업에 젬병인 반(反)조직적 인간임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지 못하고 타인들을 오해하며 매도하기까지 한다. 아래 인용문은 비에른이 동료들을 두고 하는 개탄이지만, 독자는 이제 그것을 뒤집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멍청한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멍청하다는 걸 모른다. 그들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식할 수 있고, 일이 대체로 자신이 상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말하자면 그들 자신이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시간만 그 방에>의 스웨덴 작가 요나스 칼손. ?Appendix Fotografi
<한 시간만 그 방에>의 스웨덴 작가 요나스 칼손. ?Appendix Fotografi

극적으로 과장되긴 했지만, 비에른과 비슷한 유형의 직장인은 제법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에른처럼, 자신이 바로 문제의 인물이면서 타인을 탓하는 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러니와 희비극적 정조로 ‘비에른스러움’을 풍자하던 소설은 말미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또 다른 쟁점과 맥락을 생성한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생존 경쟁에 내몰리는 비정한 세태, 눈앞의 이익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뒤바꾸는 노골적 뻔뻔함 등에 관한 메시지가 그것들이다. 그러나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여러 겹의 ‘꼬임’이 풍성한 의미 생성에 기여한다기보다는 불필요하게 초점을 흐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타인의 시선과 관계, 간섭에 시달리며 ‘나만의 방’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실존적 절규로 다가온다.

“당신들은 절대로 여기 있는 나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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