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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성의 촛불로 밝힌 기상예보의 역사

등록 2018-03-01 19:51수정 2018-03-01 20:08

바람의 자연사-그리고 곧 바람의 소리가 들렸다
빌 스트리버 지음, 김정은 옮김/까치·2만원

멋진 일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미국 텍사스 갤버스턴에서 플로리다까지, 그리고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를 거쳐 벨리즈, 과테말라까지. 생물학자인 빌 스트리버는 ‘로시난테호’라고 이름붙인 1.8톤짜리 범선을 타고 “자신감 부족이 부족한” 아내와 함께 43일간 바다를 여행한다. 어슴푸레 떠오르는 수평선 위로 별이 빛나는 고요한 박명의 시간, 퍼덕이는 날치떼, 배를 에워싸고 유영하는 돌고래떼를 만나는 것은 몹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 바뀔지 모르는 바람과 해류, 급작스런 폭풍, 다른 배와의 충돌 가능성 등을 걱정하느라 스트리버 부부는 여행 내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처럼 초짜 선원들이 ‘돛단배 모험’을 감행할 수 있던 배경에는 바람 방향을 파악하고 배의 경로를 정하며 기상 악화에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날씨 정보가 있었다. 지은이는 여행기 형식을 빌려 정확한 날씨 예보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선배 과학자들의 노력과 업적을 소개한다.

18세기 초만 해도, 사람들은 폭풍을 신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성의 발전은 바람의 원리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날씨를 미리 예측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1854년 흑해 주변 세바스토폴에 정박한 영국·프랑스·터키 선박들이 폭풍우로 참변을 당한 이후 날씨 예측의 중요성은 한층 부각됐다.

1861년 6월1일 <런던 타임스>에 네줄짜리 최초의 일기예보가 실린 이래 기상예측은 진화를 거듭했다. 가난한 농장 일꾼이었던 윌리엄 패럴은 독학으로 기하학·천체역학을 공부해 대기의 작용을 수학의 언어로 변환했고, 지구 자전이 기압의 차이로 일어나는 바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혔다. 노르웨이 출신인 빌헬름 비에르크네스는 수학과 경험의 세계를 접목해 움직이는 공기 집단의 첨단, 즉 전선(front) 개념을 정립했다.

기상학 선구자 중엔 루이스 프라이 리처드슨을 빼놓을 수 없다. 1차세계 대전 때 구급대원으로서 활동했던 리처드슨은 포연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해 위도·경도·높이 등 3차원 공간에서 대기 압력·속도 등을 기록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는 이 3차원 공간을 격자로 세분해 수천명의 작업자들이 저마다 할당된 지역의 날씨를 수학적으로 처리하는 ‘날씨공장’을 상상했는데, 이 아이디어는 후일 슈퍼컴퓨터에 의해 구현됐다. 퀘이커 교도이자 평화주의자였던 리처드슨은 기상학이 화학전에 이용되는 것에 반대해 스스로 연구를 접고 심리학과 수학을 결합한 새로운 학문세계로 접어들었다. 그는 1935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1차 삼미분 방정식’을 이용해 독일의 군사력 증강을 예견했다. 날씨 계산에선 오류가 있었지만, 2차대전은 정확히 예측한 셈이다.

슈퍼컴퓨터와 인공위성을 갖춘 요즘에도 정확한 일기예보는 쉽지 않다. “자연을 관장하는 법칙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터무니없는 날씨는 없지만, 정확히 똑같은 날씨가 반복되는 법도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카오스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없기에, 일기예보관들은 기상 모형에 입력값을 계속 바꿔가면서 실행을 반복하는 ‘조화 일기예보’를 창안해냈다.

최종 정박지인 과테말라에 도착한 지은이는 뛰어난 족적을 남긴 기상학자들뿐 아니라 날씨 연구에 매달려 사는 수천명의 기상 캐스터들과 연구관들의 노고를 떠올린다. “이성의 촛불은 때때로 빗나간 일기예보와 실패한 인공위성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연구라는 바람에 흔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불꽃은 빛나고 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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